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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할 여행

여행이라는 커다란 벽을 넘어서

이곳은 공항, 출국 편 비행기를 기다리며 탑승 게이트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여행을 앞두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몇 주 내내 복닥대는 마음에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낮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여행준비를 하느라 노트북과 씨름했고, 밤에는 자다 깨길 반복하며 잠들지 못했다.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 것은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사랑했던 대상이 두려워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을 이렇게 두려워하게 되다니. 짐을 싸는 것도, 가서 입을 예쁜 옷을 사는 것조차도. 여행의 사소한 과정마저 버겁게 느껴졌던 것은 ‘여행’이라는 단어에 ‘실패’라는 단어가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실패하면 어쩌지, 가서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다시 여행이 중단되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되면 나는 정말 이제 어떻게 하지...’ 걱정들은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그들은 나를 압도했다. 다시 또 여행에 실패하게 되면, 그땐 정말 다시는 여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설레야 할 여행 앞에서 내가 이토록 겁에 질려 떠는 것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크게 남아있는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이것을 마주하지 못하면, 이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여행이 주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잃고 싶지 않았다. 한때 절친한 친구였던 여행을,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던 선물과도 같은 여행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      


여행준비를 시작하면서 4년 전의 나를 불러냈다. 여행에 미쳐있었던 그때의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끄집어내어 들여다보았다. 함께 여행하던 배낭, 여행지에서 입던 옷, 여행하며 썼던 글들과 여행 강연을 했던 자료들까지. 마치 헤어진 전남친과의 추억상자를 연 것처럼 그때의 나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이동 편을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하면서 곧 여행이 시작될 거란 게 실감 났다. 아름다운 여행지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겁에 질려 딱딱하게 굳어있던 심장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콩닥 대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여행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이고, 얼굴에 발그레 생기가 돌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때의 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여행할 도시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터키, 낭만 넘치는 이탈리아, 남편이 살고 있는 아랍, 내 영혼의 안식처 태국. 모두 나에게 한국만큼이나 익숙하고 넘치는 두근거림을 선물해 줄 곳들이다. 이곳에 가면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러면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여행을 사랑하게 될까? 아직 잘 모르겠다.                    



4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여행을 잃은 것은 물론 몸과 마음도 함께 길을 잃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졌고 만성적인 전신통증에 시달리게 됐다. 도시 간 이동을 제외하고 순수 비행시간만 60시간 이상이 넘는 이번 여행이 두려웠던 것은 어쩌면 아픈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묵직한 약봉지를 챙겨 넣으며 여행 내내 몇 알의 진통제들을 삼키게 될까 생각했다. 이제 더는 마냥 가벼운 몸으로 여행할 수 없게 됐지만,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배낭을 꺼냈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나라의 국기를 배낭에 바느질하며 한 땀 크기의 작은 기대와 희망을 촘촘히 박아 넣었다. 그것은 불안에 떠는 나에게 보내는 무언의 응원이었다.         

    

바느질을 하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다시 보았다. 영화 말미에 여주인공이 읊조리는 대사가 마치 그녀가 나에게 들려주는 편지처럼 느껴졌다.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편안하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면.     

외부의 것이든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고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배우고자 한다면     

인정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기꺼이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인정하기 싫은 나의 모습. ‘여행을 잃은 뒤 생기와 꿈,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나’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나’를 나는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다. 만약 이번 여행을 통해 단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다면 ‘4년 전에 머물러 있는 내’가 부디 그 아픔을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으면 싶다.       

   

영화에선 내면의 평화를 찾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났던 여주인공이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를 거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해탈의 경지를 이르고 팠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그 여행을 통해 대단한 진리를 얻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그녀 곁의 사람들과 현재를 사는 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도 그것들을 연습해 보려 한다. 맛있는 것을 먹고, 순간마다 깨어 기도하고, 마음을 다해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삶에서 그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면 내가 계속 현실을 떠나 여행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생이란 삶에서 끊임없이 닥쳐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그 넘실거림 위에 자신을 맡기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내가 내 삶에 찾아오는 모든 파도를 향해 기꺼이 두 팔을 벌릴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살기 위해 꽉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 몸과 맘이 훨씬 가벼워 질지도 모른다.       




남편은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나에게 말했다. 이번 여행에서 또 안 좋은 일을 겪거나, 사고를 당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함께니까 괜찮다고,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말고 어떤 일이든 같이 이겨내자고 했다. 나는 남편의 말에 ‘그래도 싫어!’라고 질색했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 자그마한 용기가 빼꼼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어떤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강도를 당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길바닥에서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비행기를 놓치고 돈을 날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우려했던 일들이 일어나 나를 또 무너뜨리려 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스러운 나의 질문에 영화가 답을 알려줬다.      


아트라 베르씨아모
- 함께 건너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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