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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

그 말의 의미

여러 사람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 물에 녹아 옅어진다고.

나를 생각해 해준 이야기라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 생각했다.


물론 물로 씻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한결

나아겠지만, 나의 우울은 되려 물에 약했다.

비가 올 때면 마치 빗방울이 우울을 머금고

리는  울의  짙어졌기 때문이다.


우울은 단순히 물에 아서 줄어드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과

나를 돌보고 있는 느낌, 이후에 따라오는 활동

(예를 들어 로션을 거나, 밖으로 나서는 것)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생각했다.



나의 경우 물로 씻었는지의 여부보다는

몸을 움직였는가 혹은 움직여서 다다른 곳에

빛이 있는가의 여부가 감정에 영향을 주었다.


한창 우울이 찰랑찰랑 목 끝까지 차 있었을 땐

오래전에 벗어 던져뒀다 잊어버린 양말처럼

집 안 어느 구석에서 오래도록 구겨져 있었다.


물이라곤 닿지 않아 '탁'치면 먼지가 '펑'할 듯

메마른 상태에, 왠지 쿰쿰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몰골이었지만 집을 나서 햇빛을 쬐는 날이면

뽀송기분이 가벼워지곤 했다.


버짐이 펴서 버석대는 얼굴에

떡이 져서 가닥가닥 뭉친 머리칼일 지언정

볕을 쬐며 걷다 보면 씻은 듯 개운해졌다.


문득 그들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혼자서 나지막이 그 말에 대답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기보단 빛에 반응하는

'광활성'에 가까운 것 같다 라고.



우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찾아 읽었다.

"우울이란 단순히 세로토닌의 부족이라는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고로

약 몇 알로 뚝딱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계속 우울증과 싸워온 환자와 그들의 보호자,

환자를 보는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치료사까지.

각자가 처한 상황과 대처는 달랐지만 수십 권의

책 속에서 찾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는 최근에  

<벌거벗은 정신력>에서 정신과적 우울

"비정상적인 인생경험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

이라고 표현했다.


이 '이상한' 상태에 붙은 '정상적'이라는

표현이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나는 같은 구절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뭔지 모를 감정에 마음을 한참 더듬었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어려움'


마치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에게 자연스레 나타나 

슬픔, 눈물, 아픔과 같은 애도반응처럼 우울증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삶의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울한 나'를 바라보던 시선 달라지는 했다.


머리로는 내가 아픈 것을 면서도 

마음으론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 나는 스스로에게 '너는 대체 왜 이러는 거냐' 거듭 되물었다.


그것은 '아'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기보단

받아들지지 않는 '우울한 나'에 대한 못마땅

 질책에 가까웠다.


아픈 내게  무엇보다 필요했 

우울에 걸린 나 대한  아니었을까?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은 어쩌면 우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쁜 음식을 먹었을 때 올라오는 구역질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증상이자 신호다.

고로 무작정 구역을 약으로 누를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더라도 실컷 구역질을 해야만 다.


우울 또한 지금의 삶에 방식이 뭔가 잘못됐다

이야기해주는 마음의 중요한 신호와도 같다.

고로 우울을 부정하고 약으로 막을 것이 아니라

우울인정하고 의 방식 돌이켜봐야 한다.


우울이 수용성이든 광활성이든 중요치 않다.

그 보단 어서 이것을 지우고 녹여서 없애 버리려는

마음이 아닌 우울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사려깊게 우울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를 찾아온 우울과 우울한 나를 수용하고

마음이 보내는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간단한 어려운 일에 살며시 마음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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