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내린 배낭여행객들은 저마다 갈길을 찾아 분주하게 흩어졌고, 나는 스산한 공기 속에서 홀로 광장 돌바닥에 못 박힌 듯 한참을 서있었다.
신발 속으로 침범하는 빗물에 속수무책. 생전 처음 겪어보는 두 발의 통증에 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아, 폴란드에서 야간버스를 타기 위해 배낭을 메고 뛰었던 게 화근이었나 보다.
배낭을 짊어지고 어깨와 머리 사이를 좁혀 우산을 고정했다.
'정신 차려야지! 절대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어.'
두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프..라..하..한..인..민..박'
스폰서 업체 광고로 검색창 일면부터 프라하 한인민박의 목록이 촤르륵 펼쳐졌다.
15곳 정도를 골라, 사장님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러시아부터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 ... 프라하에서 오래 머무르고자 하는데, 무전여행에 가까운 배낭여행 중인지라 !@#$%...숙소에 머무르게 해 주신다면 스텝으로 열심히 일 할 자신 있습니다. ~!@#$ 연락 부탁드립니다.'
발바닥에 인대가 끊어졌는지, 염증이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프다는 이유로 여행을 중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라하에서 오래 머물며 회복할 시간을 가져야 할 텐데, 그간 해왔던 카우치서핑은 비용이 들진 않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고, 숙소를 구하자니 비용이 부담되었다.
결국은 혈연, 지연도 아닌, '국‘연뿐이었다. 한인 민박의 스텝으로 일하면서 무료로 숙식을 해결하고 발을 회복할 요량이었다.
다만, 아프다는 내용은 메시지에 담지 못했다. 그저 오래 머무르고자 한다고 간절히 말했을 뿐..
이거 위장..취업인건가?
답장을 기다리기 위해 광장 한편에 있는 이동식 상점 처마를 향해 발을 한 발 한 발 옮겼다.
운동화는 이미 빗물 가득한 어항이 되었고, 내 발은 그 속에서 질퍽질퍽 병약한 물고기가 된 듯했다.
처마 밑에서 기다리니 하나 둘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수기라 스텝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미 일하고 있는 스텝으로 충분해서 괜찮습니다.'
'무응답'
대부분은 무응답으로 답을 줬고, 몇몇 분들은 스텝을 구하지 않는다는 답장을 주셨다.
'흠...비는 그쳤네 다행이다.'
겸허하게 더 기다려보자.
'지금은 스텝이 충분해서 추가로 필요하진 않지만,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면접을 보러 와주세요.'
한인민박 프라하홀릭의 대천사 심사장님의 답장이었다.
비가 그치고 나니 햇빛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기어가듯 프라하홀릭으로 찾아갔지만, 주소가 쓰인 대문을 찾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골목을 왔다 갔다 하며 진땀을 빼고 있던 그때, 먼발치에서 문이 열리고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나를 한 번 힐끗 보고는 반대편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밍영잉...님?'
카카오톡에 저장된 내 이름은 밍영잉, 나름의 신변 보호를 위해 저장해 둔 별칭이다.
구세주였다. 알고 보니 이분은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할 매니저이자, 일러스트 작가 현우 님이었다.
그렇게 프라하홀릭에 도착해 심사장님과 면접 아닌 면접을 보고는, 내가 쓸 침대와 스텝으로서 함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안내받았다.
1. 아침 8시에 일어나 조식 상을 차리는 것을 돕기 (다른 여동생 스텝과 로테이션)
2. 손님들이 체크아웃한 후, 침구 정리 및 숙소 청소
3. 간혹 조식 식자재가 떨어지면 사장님 심부름 함께 다녀오기
...
10. 즐겁게 생활하기
배고프지 않냐는 질문에, 예의상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가?
"이제 점심밥을 준비할 건데, 그전에 냉장고에서 먹을 만한 것 있으면 꺼내줄게!"
부엌에서 식기나 재료들에 대한 설명을 마저 해주시고는, 냉장고에서 딸기요거트를 꺼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