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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Aug 03. 2023

이거 신체 포기 각서 아니야?

 십만 원 짜리 엽기 사진

스카이 다이빙,

먹을 것 안 먹고, 볼 것 안 보고, 탈 것 안 타며 아낀 돈은 이런 데 써야 제 맛이다.


자유낙하 하는 50초 동안 내 몸무게와 중력 가속도에 저항하는 공기 마찰력을 몸소, 정확하게는 잇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알에 닿겠다 싶을 정도로 눈에 찰싹 붙는 싸구려 플라스틱 고글과의 멋진 콜라보레이션으로, 무려 10만 원을 더 내고 얻은 낙하하는 영상과 사진이 담긴 USB는, 단 한 번의 감상 이후 곧바로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세상에나, 저렇게 못생길 것까지 있나.

그래도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 나는 시종일관 입을 못 다문 채 굉장히 신나 있다.

인권 보호를 위해 눈은 가렸습니다.

처음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는 한없이 빠르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하늘에 멈춰있는 듯한 순간이 온다. 나를 누르는 중력과 이와 반대로 작용하는 공기 저항의 힘이 균형을 이뤄 가속도 제로인 종단 속도에 다다른 것이다.

이때 비로소 카메라를 보고 웃을 수 있었다.


* 비하인드 스토리 *

시내 한복판, 그동안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니 스카이다이빙 업체 사무실이 나왔다. 나와 같은 타임의 사람들이 건물 바깥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고, 예약 시간에 맞춰 다 같이 사무실로 입장했다.


비행장으로 이동하기 전 30분 동안은 좁은 사무실 소파에 6명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온 인도인 친구 4명과 개그맨 입담을 능가하는 한국인 언니 한 명이 함께 했다.


인도인 친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도시락과 과자들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다이빙하고 강가에 앉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긴장해서 배고파졌어."


그 친구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강한 향신료가 든 볶음밥을 언니와 내게도 권했지만 우리는 사양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우리끼리만 먹을 순 없다며 기어코 가져온 과자를 손에 쥐어줬다.

 


그 후, 우리는 신체 포기 각서라고 봐도 무방한 서약서를 작성했다.

정적 속에서 서약서를 읽다가 주춤하며 앞을 보니, 인도인 친구 중 한 명과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우린 엷은 미소와 함께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거 해도 되는 거 맞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가장 떨렸고, 뛰어내리기 직전 문 앞에 걸터앉았을 땐 마냥 들떴다.

사진은 뭐 거의 기절 직전처럼 나왔지만.

고글이 쌍커풀을 만들어줬다. 아드레날린 최고조 사진


하루종일 하늘에서 뛰어내린 그 순간을 되새겼다. 생각해 보면 과학과 인생은 많은 것이 닮아있다. 이런 말을 하면 '비'이과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하지만.


진짜다. 손 끝은 시려오는데 한 없이 떨어지는 것만 같을 때도, 어느 순간 균형을 이룬다. 결국 아무 탈 없이 적절한 때에 발이 땅에 닿으면 열심히 앞으로 달려가면 된다.


삶은 절대 한 없이 떨어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지구에서 한 없이 떨어지는 건 없다.



작가님의 흑백 카메라,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 같이 집을 나섰다.


현우오빠를 따라 프라하성 스타벅스로 가는 길, 작가님의 흑백 카메라에 우리의 모습이 담겼다.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연스러움이라곤 눈곱만치도 스며 나오질 않는 나는, 예고 없는 작가님의 셔터에 담겨버린 자연스럽게 못난 내 얼굴과 맹한 표정이 퍽 마음에 들었다.


프라하성으로 가는 길, 흑백 사진은 그때 내가 본, 백조가 헤엄치는 강가와 맑고 밖은 하늘 아래 눈 부신 골목길의 색감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채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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