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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Aug 10. 2023

프라하성에서 버스킹 해보자!

프라하 명가수 홍비의 버스킹, 그리고 팝가수와의 듀엣

홍비는 노래를 아주 잘한다.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서 흥얼흥얼, 샤워실 문 틈 사이로 흥얼흥얼, 고구마 맛탕을 만들며 흥얼흥얼, 그저 흥얼흥얼 하는 것을 들은 것뿐이었지만 나는 홍비가 노래를 아주 잘한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홍비의 목소리는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같다. 여태 들어본 목소리 중에 가장 예쁜 목소리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홍비야 너 노래 진짜 잘 부른다. 프라하성에서 버스킹 해보자!"


오빠들도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홍비는 부끄러운 듯 재차 거절했지만 언니오빠들의 끊임없는 칭찬과 설득 끝에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 그럼 뭘 부르지?"   

"오예! 그건 지금 정하자!"


식탁에 둘러앉아 버스킹 할 노래를 고르고 골랐다.

홍비 목소리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노래를 찾아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렸다. 그리하여 이번 버스킹의 대표곡은 가수 백예린의 커버곡 '가끔'과 아리아나그란데의 'Almost is never enough'가 되었다. 홍비의 거실 리허설은 내겐 이미 도쿄돔 콘서트였다.



날이 좋은 날, 민박집 일을 모두 끝낸 후 우리는 각자 버스킹을 위한 준비물을 챙겨 집을 나섰다.

신재오빠는 흑백카메라를, 현우 오빠는 색연필통을, 나는 완충 휴대폰을, 홍비는 용기 있는 마음을 준비했다.


오늘의 일정은 프라하성 스타벅스에서 열리는 현우 작가의 그림 전시를 보고 난 후 그 근처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로 가는 길에 눈으로 버스킹 장소를 바쁘게 물색했다. 많이 붐비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멈출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찾았다.

"여기가 딱이야!"


스타벅스에서 나와 성곽을 따라 내려오는 길, 계단 한 편에 현우 오빠의 색연필통 뚜껑이 거꾸로 놓였다.

홍비는 성벽 중간에 움푹 들어간 공간에, 우리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계단에 앉았다.



홍비는  떨리는지 쉽게 노래를 시작하지 못했다. 두 뺨이 약간 붉어진 채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웃었다. 순수한 감정과 떨림이 표정과 몸짓에 그대로 드러났다. 참 예뻤다.

우리는 그저 앞에 앉아 홍비를 기다렸다.


곧 조그맣지만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는 점점 커졌고 곧 수줍지만 편안한 표정으로 노래를 이어나갔다. 프라하성벽에 걸터앉아 노래하는 모습을 앉아 보고 있으니 괜히 뭉클해졌다.


지나가던 사람 몇 명이 잠시 머물며 홍비의 노래를 듣기도 했고, 선글라스를 낀 멋진 아주머니는 박수와 함께 엄지를 올려주셨다.



프라하에서의 생활은 늘 이렇다. 재밌는 생각과 용기 있는 행동의 연속이다.

식구들은 서로 그 생각과 행동에 기꺼이 몰입해 주고 함께 해준다. 그러니, 어느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깊이는 배가 된다.



* 비하인드 스토리 *

버스킹 이후에도 우리는 종종 홍비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하루는 신재오빠가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아는 호주 친구가 있는데 페이스타임으로 듀엣 해볼래?” 

알고 보니 그 '아는 호주 친구'는 무려 호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팝가수였다.


우리는 늦은 밤, 마침 손님 없는 2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걸터앉아 리허설을 했다. 나름 유명 가수와의 듀엣인지라 만발의 준비가 필요했다. 현우오빠가 호주 친구의 역할을 맡았고 둘은 열심히 듀엣을 연습했다.


“이제 전화한다?”


영상 통화가 연결되고 식구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노래를 제안했다.

“Almost is never enough로 듀엣 하는 거 어떠세요?ㅎㅎ”


흔쾌히 아는 노래라며 먼저 노래를 시작하셨다. 그 후 홍비가 노래를 잇고, 호주 친구분이 그 위에 음을 더했다.


네트워크 딜레이에 의한 시간차 듀엣이었지만, 그저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

                    

버스킹 사진으로 만든 홍비의 앨범 자켓 '익숙한 그집 앞 계단'(made by 신재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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