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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Aug 17. 2023

무심한 포장에 담긴 꿀케이크

프라하에서 사랑했던 간식들에 대한 이야기

체코 제일가는 도넛,

현우오빠가 그랬다. 체코에 제일가는 초코 도넛이 있는데, 살면서 먹어본 도넛 중 단연코 제일 맛있다고.

묘사한 모양새는 클래식했다. 꼭 가운데가 뚫려있어야 하고, 위쪽 단면에 초코 코팅이 덮여있으면서도, 중요한 건 그 안에 부드러운 초코 필링이 채워져 있어야 했다.


알고 보니 그 도넛은 유명 제과점의 도넛이 아닌, 유럽의 흔한 대형 식료품 할인마트 ‘Lidl’의 자체 제작 상품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넛을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매번 Lidl로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도넛 코너를 확인했다. 종종 그럴듯한 외관을 가진 도넛에 속아, 신이 나서 갈색 종이 포장지에 담아 계산대에 올려두곤 했지만, 매번 실패였다.


매장을 빠져오자마자 앙 물어뜯은 도넛은 결코 초코필링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프라하에 머무른 한 달 동안 그 도넛은 찾지 못했고, 전설의 도넛으로 남게 됐다.


속았다


무심한 포장에 담긴 조각 케이크,

프라하 시내로 함께 장을 보러 갔다가 다 같이 먹을 디저트로, 몇 개의 조각 케이크를 포장했다. 이렇게 외출한 후 디저트를 포장해서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신이 난다.


맛이 궁금한 조각 케이크를 아무런 무늬 없는 무심한 종이에 덮어 가지고 오는 길에는, 온 신경이 손바닥 위에 집중된다. 손잡이가 있는 비닐 백이나, 코팅된 각 잡힌 종이 박스, 또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 중 어떤 카페나 베이커리에서도 그런 포장은 볼 수 없었다.


겹겹이 쌓인 포장재 대신 큰 종이 한 장에 디저트가 엉성하게 덮인다. 일용할 디저트가 담긴 엉성한 종이 덩어리를 건네어 받으면 기울어지지 않게 조심히 손바닥에 올리면 된다. 그렇게 집까지 오는 불편한 이 길이 오히려 재미를 더한다.


아, 내가 유럽에 살고 있는 게 맞는구나!   


촉촉한 꿀케이크


굴뚝빵, 뜨르들로,

사실 굴뚝 모양을 한 뜨르들로는 체코의 전통 간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굴뚝빵을 유서깊은 체코 전통 간식이라 일고있지만, 이것은 마치 명동에서 파는 탕후루가 유서깊은 우리나라 전통간식이라 하는 것과 거진 비슷하다.

프라하 관광객을 타깃으로, 옆 나라의 특색있는 간식을 들여와 팔게 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즉, 굴뚝빵을 ‘전통빵’이라고 하기엔 원조가 따로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넘어온, 관광객을 위한 간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 시초에 대해 확실히 확인된 바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굴뚝빵은 맛있다는 것이다…


피스타치오 젤라또 만큼은 아니지만 체코에서의 내 차애 간식은 굴뚝빵이다. 굴뚝 모양으로 길게 돌돌 말려 구워진 빵은 곧 설탕 위에서 돌돌 구른 후, 그 안에 토핑이 채워진다. 굴뚝 안에는 누텔라를 바르거나, 아이스크림, 생크림 등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설탕 위를 구른 플레인 굴뚝빵 또는 누텔라를 바른 굴뚝빵을 좋아한다. 한 입에 ‘왕’ 물어 베어내기 보단, 돌돌 말린 결대로 뜯어먹는 것이 더 재밌다.


피스타치오 젤라또,

홍비도 드레스덴으로 휴가를 떠나 심심한 참에 오랜만에 까를교 야경을 보러 나왔다. 유난히 추운 날이었지만 피스타치오 젤라또는 포기할 수 없다. 오늘은 사치를 부려 두 스쿱을 올렸다.

피스타치오 한 스쿱 위에 코코넛 한스쿱.


원래 항상 가는 젤라또 가게는 ‘엔젤라또’라는 유명한 집이었지만, 신재오빠와 우박 떨어지는 날 우연히 발이 미끄러져 들어갔던(..!) 이곳이 나의 넘버원 젤라또 가게가 됐다. 땡땡이 앞치마를 입은 언니가 올려주는 조금 더 진득하고 고소한, 인심 좋은 피스타치오 스쿱에 반했기 때문이다.


두 스쿱을 얹은 오늘은, 콘을 건네받자마자 땡땡이 앞치마를 입은 언니에게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으아오 엄청 많이 주셨네요!!”


그 언니는 말 없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세상에나, 역시 하루의 행복은 아이스크림 스쿱 크기에 비례한다.


프라하 성과 까를교의 주황 불빛이 보기 좋게 담기는 강변에서 걸음을 멈췄다. 역시 까를교 야경은 질리지 않는다.

함께한 사람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그리고 젤라또의 스쿱 수에 따라 매번 새롭다.

보통의 스쿱 크기, 그치만 엔젤라또 아저씨도 친절하시고 젤라또도 충분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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