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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Aug 31. 2023

브르노로 진짜 가요! 우리?

귤 향기 은은하게 밴 그림과 브르노로 향하는 신나는 발걸음들

프라하에 모인 얼굴들,

민박집 거실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신재 작가님의 사진 손님 혜성은 작가님의 권유로 사진 산책 이후 잠시 이곳에 들른 것이다.


이미 거실 테이블에 모여있던 민박집 식구들과 손님들, 산슬언니와 이보는 혜성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왜 프라하에 오셨어요?“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 서로 다른 이유로 프라하로 향했고, 각자 다른 길을 거쳐, 다른 생각을 가지고, 결국 이곳에 모였다.

다양한 모양의 인생들이 이 테이블 한 데 모인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성언니는 그림 여행을 하고 있었다. 길고 긴 의대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부터 도화지와 그림 도구들을 챙겨 나왔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곳 어디든 풀썩 앉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우리 민박집에도 그림으로 자칭, 타칭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야심 차게 도화지와 색연필이 올라왔다. 드로잉 액티비티가 시작됐다.


각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도 하고, 서로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그려주되 도화지를 보지 않고 프리 드로잉을 하기도 했다.

결과물은 처참했지만 그만큼 거실에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처참한 얼굴을 그리고 있는 나를 그려준 혜성언니의 따뜻한 그림


브르노로 놀러 오세요!,

얼굴들이 난무했던 그날, 산슬언니는 나와 혜성언니에게 브르노에 놀러 오기를 제안했다. 아무 계획이 없는 그림 여행자와 이제 막 발바닥이 나은 민박집 알바는 못 갈 이유가 없었다.

“진짜 가요! 우리?”


언니들과의 브르노 소풍은 행복 그 자체였다.

출발하는 날 아침, 유치원 소풍날 이른 아침 엄마가 부엌에서 김밥을 싸는 소리에 저 절로 눈이 떠졌던 것처럼, 맞춰 놓은 알람보다 삼십 분 일찍 일어났다.


이 설렘은 소풍 내내 어디서든 가득했다.

혜성 언니와 브르노로 가는 버스 안, 언니들과 연신 ‘너무 맛있어!’를 외쳤던 쌀국수 가게 안, 사랑이 가득했던 이보의 부모님 댁과, 별이 가득했던 뒷산, 그리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산슬 언니가 사는 집에서 전부 그러했다.


브르노로 가는 버스에서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잠깐 사이에 나도 모르게 금새 잠에 빠져버렸다. 문득 잠에서 깨니, 혜성언니가 무언갈 그리고 있었다. 귤껍질을 휴지 삼아 그리고 있는 것은 내 모습이었다. 따뜻한 바깥풍경과 그날의 분위기가 너무나 잘 담겨있는 이 그림에는, 귤 향기와 함께 언니의 따뜻한 마음도 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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