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day2, 레이니우스와 나들이
Day2
실컷 낮잠 자고 일어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낮과 밤이 공존하는 듯한 풍경에 걸음을 늦췄다.
숙소로 들어가니 거실에서 러시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계셨다. 눈인사를 하며 지나치려는 찰나에 내게 말을 거셨다.
“이거 먹어볼래?”
물론 러시아어로 말을 거셨지만 눈치껏 알아채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머니 옆에 앉았다.
“이게 뭐예요??”
스티로폼 그릇 안에 갈색 덩어리가 가득 담겨있었다.
“따라 해봐~ 하알 바! ”
“이건 할바야. 자 이제 네 앞에 있는 그 차를 함께 마셔봐!”
고소한 맛이 나는 스윗이었다. 미숫가루에 갈색 설탕을 마구 부어 섞은 맛이랄까?
“아저씨! 얼굴이 되게 빨개요!!”
한국 맥주 카스를 마시고 계시던 러시아 아저씨를 향해 말했다.
“Yeah! It’s a sunset, but what can I do?!”
- 맞아 노을색이지 어쩔 수 없어~
day3
계란 두 알로 만든 스크램블 에그 위에 닭가슴살을 올렸다. 어제 먹다 남은 샌드위치에 스미따나를 발라 홍차와 함께 먹었다. 허술한 아침 식사일지라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나온 게스트하우스 장기체류자 레이니우스는 내가 무언가를 먹고 있으니 절망적인 표정을 보였다.
"너 나랑 블린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
"레이니우스 걱정 마 이건 에피타이져야."
(어제저녁, 거실에서 러시아 어른들과 할바타임 함께 하는 중에 마주친 레이니우스와 함께 블린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로 했었다.)
그제야 내가 무엇을 먹는지 궁금해했다.
"생선이야?"
"이건 생선이 아니라 닭가슴살이야~ "
레이니우스는 냉장고에서 파란색 플라스틱통을 꺼내, 안에 있는 음식을 두 숟갈 떠 접시에 옮겨 담았다.
"이건 네 거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러시아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주며 이름을 알려주곤 한다.
레이니우스가 이 음식의 이름을 구글 번역기에 돌렸다.
이 음식의 이름은 '차가워지다'였다.
구글 번역기가 상당히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맨 아래 잘게 찢은 참치 같은 것이 깔려있고 그 위에는 투명한 젤리를 올려 굳힌 듯했다. 그 위에 겨자씨 소스가 얹어졌다. 비주얼이 어마어마했다.
처음에 일그러진 얼굴로 이게 뭔데...라고 계속 물어보는 나에게 레이니우스는 그냥 한 번 먹어보라고 말했다.
참치가 아니었다. 소고기, 한국의 장조림 하고 아주 비슷한 맛이었다. 장조림맛 젤리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오 맛있어요! 이거 한국 반찬하고 맛이 똑같아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니 무척 뿌듯해했다.
레이니우스와 점심 즈음 밖에서 만나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외출 준비를 하던 중 밖에서 들려오던 음악 소리를 따라 걸었다. 바로 옆 광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합창공연을 하는 중이었다. 무대 옆에는 버스가 한 대 서있었는데 그 앞에서는 다음 춤 공연을 기다리시는 할머니께서 살랑살랑 연습을 하고 계셨다.
정말 행복한 표정이었다.
유명한 블린 맛집, 우후뜨 블린에 들어가 살구 블린, 바나나초코블린 그리고 커피를 시키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부산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건설 현장에서 철기둥을 조립하고 해체하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지만 평창 올림픽 때문에 영사관에서 입국을 거절했고 3개월 뒤에나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지난번에 '왜 이렇게 좋은 도시에서 묵으면서 왜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예요?!'라고 물었던 게 떠올랐다. 그땐 '거기서 거기야~'라고 대답하는 레이니우스를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3개월 동안 체류할 수밖에 없는 레이니우스의 사연을 알게 되니 , 그때의 질문이 미안해졌다.
한참 더 걸어가는데 연기가 자욱한 거리가 나왔다.
"샤슬릭 먹어볼래?"
"음... 좋아요!!"
주문을 위해 줄을 섰다. ‘라바쉬’라는 또띠아 비슷한 것을 사고 양고기 샤슬릭을 주문했다. 레이니우스는 맥주, 나는 물을 주문했다.
"니엣가즈!"
탄산수가 아닌 생수를 주문할 때 꼭 말해야 한다. ‘탄산 없는 걸로요!’
걸어오다가 화려한 정교회 사원을 우연히 보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원안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문을 열어 보고,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안을 보고나선 다시 문을 닫고는,
"너무 경건해서 들어가진 못하겠다....;;"라고 말하곤 우리끼리 마구 웃었다.
레이니우스와 놀러 다니는 동안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데 사진 구도가 대단히 이상했다.
인물사진은 상반신만!
인물사진의 꿀팁을 알려드렸다.
해 질 무렵까지 맛집탐방과 함께 명소를 걸으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꽤 잘 맞는 친구가 생겼다.
덕분에 아주 좋은 추억이 생겼어요 스파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