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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Jan 11. 2024

첫 카우치서핑, 따뜻한 리자 루슬란 커플과 함께

블라디보스톡 다섯째 날, 친절한 리자와 시내 산책

오늘은 생애 첫 카우치 서핑을 하는 날이다.

루슬란이 숙소까지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먹고 떠날 채비를 했다.
냉장고에 넣어 둔 샤슬릭(고기 꼬치)과 닭가슴살, 과일, 계란 등 내 식량들을 빠짐없이 챙겼다.


12시에 체크아웃하고 밖으로 나가 루스란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기웃거리고 있는데, 

루슬란의 여자친구 리자가 뛰어왔다.


"안녕! 우리 차는 저기 있어, 가자!"

집에 가는 차 안은 내 여행 이야기와 각자의 일상 이야기로 가득 찼다. 루슬란과 리자는 20대 후반의 오랜 커플이었고, 따뜻한 말투와 행동, 웃는 모습까지, 둘은 무척 닮아있었다.


첫 카우치 서핑, 예감이 아주 좋다.



리자는 내가 쓸 방을 소개했다.

방이 꽤 컸는데, 방 안에서 내려다 보이는 블라디보스톡 바다가 정말이지 눈이 부시게 예뻤다.
이런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는 리자와 루슬란은 행복하겠다.


"이 소파에서 자거나 에어 매트를 깔아줄 수 있어."

"나는 소파에서 잘게!"

"그래, 루슬란은 이 소파에서 자는 걸 좋아해!"


 옆에서 루슬란이 말했다.

"리자가 맨날 나보고 여기서 자라고 쫓아내… "

 

리자가 친절히 커버를 씌워주고 이불을 깔아줬다.

그리고 그 위에 커다란 베개를 올려줬는데, 그 베개는 살면서 만져 본 베개 중 제일 폭신-했다.

"소파에서 자게 해서 미안해"
"으에~ 아냐! 되게 푹신하고 자기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베드 서핑이 아니라 카우치 서핑을 하러 왔는걸!"


리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 동선을 생각해 모든 것을 설명해 줬다. 화장실로 데려가서는 샴푸, 폼클렌징, 심지어 손 씻는 데톨까지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다.

리자의 섬세함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리자, 나도 이게 뭔지는 알아 그렇게 자세히 설명할 필요 없엌ㅋㅋㅋㅋ"

 우리가 큰 소리로 웃자 방에서 일을 하던 루슬란이 궁금해했다.
"루슬란! 리자가 나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어, 손 씻는 비누까지도 말이야! 너무 친절해!"


리자가 출근하는 5시까지, 함께 시티 센터 구경을 하기로 했다.

출발하기로 한 3시가 되고 작은 가방을 챙기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코피가 팡! 터졌다.

주변에 휴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리자!…"
애처로운 목소리로 방 밖에 있는 리자를 불렀다.

피를 흘리는 나를 본 리자는 몹시 당황하더니 화장솜과 휴지를 한 움큼 가져와, 바닥에 떨어진 피를 닦아주고 얼음을 가져와 지혈을 도와줬다.

"원래 코피가 자주 나니?"
"응 나는 예전부터 환절기만 되면 항상 코피를 흘려. 근데 항상 왼쪽 코에서만. 당황했지? 심각한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 리자. 나 얼른 나가고 싶어!"




지혈을 마친 후 리자와 함께 시티 센터로 향했다.
가는 길에 포크롭스키 공원에 들러 잠시 산책을 했다. 혼자였다면 결코 알지 못하고 지나쳤을 재밌는 사실들을 설명해 주었다.

어느 동상 앞에 서서 잠시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고는, 동상 가까이로 가서 뒤편에 숨겨진 토끼를 보여줬다.

"오! 이건 정말 관광객들은 못 보고 지나치겠다. 신기한데?"
"이 토끼의 코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토끼의 코는 닳아 금색빛이 났다.
나도 한번 손을 얹어보았다.


공원길을 따라 내려가니 화려한 사원이 있었다.

"어, 어!!! 나 여기와 봤어!"

알고 보니 이곳은 레이니우스와 우연히 들렀던 그 엄숙한 분위기에 차마 들어가지 못했던 정교회 사원이었다.  이 공원도 산책한 적이 있었지만 반대로 들어오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아르바트 거리를 걸으며 자동차들이 내뿜는 고약한 매연 냄새에 놀라자. 블라디보스토크의 재밌는 자동차 소비 정책에 대해서 들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각 가정마다 자가용을 단 한 대씩만 구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정부가 환경을 생각해서 그런 거야?"


"아닌 것 같아, 정부는 그런 것에는 관심 없을걸"




혁명광장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알 수 없는 단체 관광객이 몰려있었다.
리자는 멀리서 오시는 그분들을 보더니 말했다.

"저분들은 한국인이야."


"우와 나도 모르겠는데 너는 어떻게 알았어?"


"응, 중국인들은 한껏 차려입고 관광을 와, 하지만 한국 어르신들은 등산복을 입고 관광을 오시거든. 대부분 노스페이스. 그래서 난 알 수 있어."


 유리에 비친 내 운동복 차림의 모습이 보였다.


"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를 봐, 나도 운동복 차림이야! 한국인은 편한 게 최고라고 생각하나 봐."


우리는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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