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다 못해 음산한 기운이 도는 하늘은 어두운 녹지에 초점이 맞춰져 더욱 하얗게 표현된다.
녹지는 광원이 구름에 가려져 명암차이가 확실치 않아,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앞과 뒤의 기울어진 나무, 휘날려 올라가는 종잇장, 남성의 중절모, 굽어 흐르는 하천, 모든 것이 오른쪽 상부를 향해 이질적인 궤도를 그리고 있는 것도 사진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사진은 빛과 색, 인물의 몸짓과 사물의 움직임이 만드는 이질감 또한 새로운 의미를 창조했다.
이질감, 비현실감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가득 덮인 구름 뒤로 신의 존재를 상상하게 했고 무지막지하게 날아오르는 종이들이 하여금, 거센 바람이 신의 분노 또는 경고로 느껴진다.
사진에서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땅 전체가 하늘의 그림자로 가득 찼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하늘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 위에는 거센 바람에 노련하게 모자와 옷깃을 움켜쥔 농촌 사람 두 명이 보이고, 이들과는 달리 현대풍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어찌할 바 모르는 자세로 바람에 서류 다발과 모자를 빼앗기고 있다.
사진 제작연도, 1993년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을 투사해 보게 된다.
농촌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 자꾸만 압력을 가하는 관계자와, 힘없는 농촌 주민의 계속되는 대치 상황에서 신은 주민의 편을 들어주는 듯 보인다. 게다가 유일하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뿐이다. 신의 존재를 망각한 채 인간성을 상실한 중년 남성에게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기 위해 모자를 빼앗아 하늘을 보게 만든 것이다. 또한, 유일한 얼굴 노출은 시선의 집중을 유발하고, 찰나에 엇갈린 두 다리와 우스꽝스럽게 벌어진 입은 사진을 감상하는 이의 심판대 위에 오르게 한다. 농민을 압박하는 서류 다발을 빼앗기고 있는 여성 또한 얼굴이 스카프에 감겨 우스꽝스럽다.
반면에 앙상한 가지에 붙어있던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마치 힘겹게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애쓰던 이에게 자유를 선포해 주는 것만 같다. 날이 개고 햇볕이 잘 드는 계절이 오면 새로이 돋아나는 잎사귀들로 가득하게 해 주겠노라 말하는 것 같다.
이 사진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작품답게 배우를 이용하여 여러 번의 촬영 시도 끝에 콜라주 형태로 원하는 구성을 만들고, 사진이 단순히 순간을 기록한다는 보편적 개념을 깨고의도적으로 순간을 창조해냄으로써사진에 대한 개념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