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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Nov 16. 2023

류블랴나에서 만난 내 친구 파비오

이탈리안 파비오 아저씨와의 첫 만남

사랑스러운 도시, 류블랴나

프라하에서의 긴 여행을 마치고 넘어온 도시는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이다.

이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이 도시의 존재도 몰랐지만, 폴란드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 링유를 통해 류블랴나의 존재를 알게 됐다.

"여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야. 작은 도시지만 정말 정말 매력적이야"

그렇다면 안 갈 수 없지. 그렇게 즉흥적으로 '가야 할 곳' 목록에 류블랴나를 써넣었다.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류블랴나는 정말 그 뜻에 걸맞은 도시였다. 정든 프라하를 뒤로 하고 헛헛한 마음으로 도착했음에도,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풍경에 눈 녹듯 기분이 풀렸다. 물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공기에 담긴 달콤한 향기와 노랗게 물든 나무가 나를 설레게 했다.


물길 양 옆으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빵집과 아이스크림 가게, 레스토랑이 줄 지어 있고, 물길 위로는 양 옆을 오갈 수 있는 짧은 다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류블랴나에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아침 일찍 시내로 가는 길에 제일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카페에 들어가 웃는 얼굴로 맞아주시는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아침 특선 크루아상-드립커피세트를 2유로에 테이크아웃한다. 그다음은 앞서 걷는 아저씨처럼 크루아상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목도리에 떨어지는 가루를 툭툭 털어내며 걸으면 된다. 그렇게 이리저리 헤맬 일도 없이 적당히 자그마한 동네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이 동네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하지만 사다리 타기 게임을 하듯 물길을 자꾸만 가로질러 여럿 상점을 기웃거리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도시의 손님이었다.

젠틀맨, 이탈리안 파비오 아저씨

첫 류블랴나 시내 구경에 들떠, 이리저리 골목길을 거닐며 눈 마주친 사람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눴다. 그러던 중 키 큰 중년의 이탈리안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Hello, Are you Japanese?"


썩, 기분 좋은 인사말은 아니었만 친절히 나의 국적을 밝혔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얼마나 한국을 좋아하는지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으로 출장을 가는데 꼭 못 가본 도시를 가보곤 한다고 했다.

몇 마디 대화 후,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고나서는 경계를 풀고 함께 거리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는 끊임없는 파비오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I wanna ask you one thing~”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는 제스처와 함께, 질문을 하나 하겠다고 말하고서는 족히 열 개가 넘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 관해, 가족에 관해, 꿈에 관해, 각자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살아온 삶을 나눴다.

낯선 사람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었던가?


오늘 베니스로 떠나는 파비오였기에, 호텔에서 남은 일을 처리한 후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남은 대화를 이어가기로 기약했다.

나는 다시 혼자 거리를 걸었다.


파비오와의 점심식사

파비오의 애정하는 식당 앞에서 다시 만났다. 출장 올 때마다 오곤 한다는, 멋진 뷰를 가진 식당이었다. 이곳에서 난생처음으로 생트러플이 올라간 파스타를 맛봤다. (독특한 트러플향와 그 감칠맛에 반해버렸으나, 이후 같은 맛을 한국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이탈리아 사람답게 illy커피를 파는 카페를 찾아,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시켜 놓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경비로 6개월 여행이 가능하단 말이야? 정말 대단하다. 그렇지만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에 큰 즐거움일 텐데,”

“괜찮아요. 저는 이번 여행에 더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건, 파비오 아저씨처럼 우연히 만나는 값진 인연이거든요. 저는 이런 인연이 쌓여가는 것이 더 큰 행복이에요!”

저녁까지 파비오와 함께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내가 가진 고민과 생각들을 털어놓을 때면 지혜로운 답으로 내게 용기를 주셨다.

마지막 작별 인사 끝에는 사뭇 진지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이셨다.

“민영, 너는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야. 뭐든 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난 그게 보여.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도록 하자. 좋은 여행 되렴!”  



이후 매년 겨울, 한국으로 출장 오는 파비오와 주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밀린 근황을 업데이트하곤 한다. 내 친구 파비오, 항상 용기와 힘을 주는 참 소중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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