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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Nov 30. 2023

버스에 갇혀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곳

류블랴나 와인 축제, 그리고 첫 버스 탑승기

모두 다 와인잔을 들고!,

시내의 중심, 트리플 브릿지 일대는 와인축제가 한창이었다. 각기 다른 와이너리 부스들이 좌르르륵 줄 지어 서있고, 그 사이에는 오일, 치즈, 빵 등 와인 안주를 파는 개성 있는 부스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중앙 부스에서는 와인잔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는데, 단 돈 1유로에 어느 부스에서든 와인을 시음을 할 수 있는 쿠폰을 살 수 있었다. 술을 잘 못하는 나지만,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쿠폰 두 장 주세요!, 아니에요. 한 장만 주세요."

아, 말이 앞섰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알콜 쓰레기다.



와인 담은 잔을 조금씩 홀짝이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유러피안 아저씨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부스로 다가갔다. 슬로베니아에서 와인 안주로 인기가 많은 호박씨 오일을 맛볼 수 있는 부스였다.

올리브 오일도 아닌 호박씨 오일이라니. 한 입 크기로 잘린 빵을 짙은 색 호박씨 오일에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아주 진하고 고소한 맛이었다.   


아, 기분이 좋다.

취해서가 아니다. 와인잔을 들고 류블랴나를 누비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모든 피스타치오 젤라또가 맛있는 건 아니다,

이번 배낭여행에서 사랑하게 된 음식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피스타치오 젤라또이다. 어느 도시를 가던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꼭 맛보곤 했다. 과연 슬로베니아의 피스타치오 젤라또는 폴란드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재앙이다. 양 많고 싸지만 이건 아니다.

고작 두 번으로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성급히 일반화할 필요가 있을 만큼 재앙이었다.



버스에 갇혀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곳,

이제 배낭을 메고 있을 땐 30분 이상의 도보 거리는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제 발을 좀 사려야지.(족저근막염으로 프라하에서 강제 한 달 살기 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중)


꽤 오랜만에 이용하는 버스다. 구글맵에서 버스 요금이 1.5유로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기에 동전을 손에 꼭 쥐고 버스에 올라탔다.


동전을 넣는 곳을 못 찾아, 기사님께 손을 펴보였다.

"기사님께 드리면 되나요?"


미소 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 버스를 타기 전에 저기에서 카드를 구입해야 해. 하지만 이번엔 그냥 타렴!"


"으아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배낭은 의자의 8할을 차지했고, 그 배낭에 매달려 있는 나는 나머지 1할에 엉덩이를 간신히 걸쳤다. 앞에 마주 보고 앉아계신 할아버지께서 말을 거셨다.


"이거 너 써! 교통카드인데 안에 얼마가 남았는 진 모르겠지만 충전도 할 수 있으니!"


"우아, 감사합니다!"


기사 아저씨와 나누던 얘기를 들으셨던 모양이었다. 엘런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 직전에서 버스 시동이 꺼졌다. 이 버스는 전기버스였는데, 뭐가 문제였는 지는 모르지만 시동이 꺼지면서 모든 게 정지됐다. 출입문마저도.


버스 안에 갇혀있던 5분 동안 그 누구도 짜증 내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이 상황을 즐기며 웃고 있었다. 엘런 할아버지는 내게 걱정 말라는 눈짓과 함께 허허 웃으셨다.


1분, 2분, 시간이 지체될수록 다른 승객분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버스나 기차 시간에 늦은 건 아니지?"


"네! 문제없어요. 바로 요 앞이 친구집이거든요!"


테레사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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