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랴나 작은 동네에 단골 카페가 생겼다.
와이파이가 없는 테레사 집에서는 수다를 떨거나 일기를 썼다. 인터넷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제법 만족스러울 때쯤 거리를 걷다가 멋진 곳을 발견했다. 작은 이 동네에 분위기 좋은 카페라니. 가게 밖 창문에는 커피 그림과 와인 그림이 붙어있었다. 아, 와이파이 그림도.
와인 한 잔에 1.3유로. 커피 가격과 같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와인이지!'
1.3유로에 질 좋은 와인과 유리병에 담긴 땅콩, 그리고 와이파이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지라, 팡팡 터지는 와이파이에 정신이 혼미했다.
아, 아주 마음에 드는 아지트를 찾았다.
"테레사!! 밖에 눈 와!"
11월에 슬로베니아에서 맞는 첫눈이라니, 한참을 창밖 거리에 쌓이는 눈을 바라봤다.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거리였다.
'이 풍경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다음 여행지를 정하기 위해 오늘도 동네의 그 카페로 향했다.
"화이트 와인 한 잔 주세요!"
같은 자리, 같은 와인, 하지만 오늘의 창밖 풍경은 어제와 달랐다. 흰 눈이 펄펄 날리는 그림을 걸어 놓은 듯한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 생각했다.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다 툭 땅콩을 얹으니 눈사람이 완성됐다.
다수가 말하는 세상의 논리와 이치에 내 문장을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가 언제 행복한 지, 내게 무엇이 중요한 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언제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는 나령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섯 시간 삼십 분 간의 통화였다.
내 배낭 속엔 항상 통후추와 마늘 그리고 스파게티면이 들어있다. 오늘은 프라하에서 가져온 햇반과 어제 산 치즈로 테레사와 함께 마늘 리조또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테레사와 작별 인사를 할 때 한국에서 가져온 호박 모양 마스크팩을 선물했다. 할로윈은 지났지만.
웃음 많은 테레사는 분명 이 마스크팩을 얼굴에 올리는 순간 빵터질게 분명했다.
"고마워! 이 뒤에 쓰여있는 사용법 좀 해석해 주라!"
"이건 사용법은 아니고 주의 사항인데, 음... 만약 이걸 사용하는데 얼굴에 이상... 이 생기면 그 만두….."
"뭐라고? 설마 얼굴이 호박 같이 커지거나 그러는 거 아냐?ㅋㅋㅋ"
류블랴나를 사랑한 게 하늘에도 소문이 난 건지 떠나는 마지막 날은 멋진 구름과 풍경을 선물 받았다. 류블랴나를 떠나기 직전, 매일 와인으로 낮술을 하던 그 카페에 들렀다. 오늘은 거품이 가득 올라간 카푸치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