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버스 안에서 코끼리 코 스무 바퀴 완전 가능
긴 배낭여행 중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도시를 이동하는 야간 버스에서 먹을 간식을 사는 순간이다. 특별히 맛이 뛰어나지도 않을 기내식을 기다리는 작은 설렘처럼, 기껏해야 비스킷이나 과일 같은 냄새가 나지 않는 간식일테지만 말이다.
짧게는 5시간, 길게는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보거나 일기를 정리한 후 신중하게 골라온 간식을 하나씩 꺼내 먹는다. 버스 안에서의 시간도 내게는 잊지 못할 여행의 순간이다.
사실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멀미가 심한 탓에 버스에서 무언갈 먹거나 글을 쓰는 것은 상상만 해도 멀미가 났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시절에는 소풍 가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 친구가 김밥 도시락을 열자마자 모든 걸 게워낼 정도였고, 지금까지도 김밥 냄새를 좋아하지 않을 정도이다. (같은 사유로 소풍 과자의 대명사 '아우터' 과자의 냄새도 정말 싫어했다.)
하지만 이젠 버스가 집 같이 편해졌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코끼리 코 스무 바퀴 쯤은 거뜬히 돌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가까워지는 아드리아 해변도로를 달리는 중,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버스 창가에 붙어 아름다운 석양을 사진에 담기 바빴다. 하지만 이내 셔터 소리가 잦아들고 그저 조용한 감탄사만 들려왔다. 다들 이 석양의 아름다움을 감히 사진기에 담을 수 없음을 깨닫고, 눈과 마음에 온전히 담는 듯했다.
거의 밤이 되어 도착한 베네치아 본섬.
사실 모든 여행지를 통틀어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 베네치아였다.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인적 드문 골목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 이래서 베네치아 베네치아 하는구나!'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저 잠시 둘러보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2박 3일, 배낭여행 중 가장 짧은 일정으로 계획한 것이 후회되는 밤이었다. 프랑스로 넘어가는 버스 티켓을 미룰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쉬움을 한 조각을 남기고 간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만날, 보고픈 유림과의 만남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2박 3일 동안 베네치아를 듬뿍 느끼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