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헤매는 것, 오늘의 식사를 고민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손재주 좋은 너는 프랑스 리옹, 비좁은 기숙사 주방에서도 그 실력을 뽐냈다.
날이 무딘 과도 따위는 너의 요리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신촌 자취 생활 내내 나의 제1의 소울 푸드였던, 넓적한 당면이 들어간 찜닭.
매콤한 쫄면에 바삭한 삼겹살.
김가루 살살 뿌린 치킨마요 덮밥.
매 끼니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척척 식탁에 올리던 너였다.
이는 철저히 사전 기획한 메뉴였다.
한식당은 꿈에서도 못 갔을 배낭여행객을 위한 너의 야무진 애정이었을 것이다.
매일 빡빡한 관광 스케줄을 소화하고 돌아와서도 끼니때가 되면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너.
장난으로라도 생색을 내거나 힘든 기색을 비친 적이 없었다.
사실 여행 중 비싼 한식당에서 된장찌개 정식을 먹은 적이 있다.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한국인 아저씨들께서 내 여행을 응원해 주시며 사주신 점심이었다. 하지만 네가 나를 위해 차려준 어딘가 어설픈 식사가 그 무엇보다 지친 나를 힘나게 했다.
아무리 무계획의 자유로운 여행을 해온들, 길을 헤매는 것, 오늘의 식사를 고민하는 것…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 뿐이다.
리옹에서는 그저 너에게 찰싹 붙어 흘러다니기만 했다.
진정한 자유 여행이었다.
거침없이 대중교통을 갈아타는 너의 뒷모습이 어찌나 늠름하던지,
네가 가자는 곳을 가고 먹자는 것을 먹으면 모든 게 예외 없이 완벽했다.
역시 너는 내 취향과 입맛을 꿰뚫고 있었다. 내 감동 포인트 까지도.
리옹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는 버스에 올라타기 직전,
너는 내 손에 큰 봉투를 쥐어줬다.
마트와 빵집에서 이것저것 맛난 것을 사 넣은 것이었다.
"선물이야~버스에서 먹어!"
교환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선물을 준비한단 말인가.
게다가 너와 함께한 몇 년의 시간 동안 다정한 말투는 영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때만큼은 퍽 다정한 말투와 표정이었다.
버스에 올라 네가 없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눈물을 훔쳤다.
네가 리옹으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을 때, 유럽 땅은 밟아본 적도 없었던 나는 네가 우주처럼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별안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나는 조금씩 유럽에 가까워졌고
결국 멀게만 느껴졌던 리옹에 도착했다.
너와 함께 지내는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네가 지내는 곳에 머물며,
네가 얼마나 넓은 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각도 하며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품고 살아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