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도 이상하게 답답해졌다
그 시절의 나는
내 삶이 충분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만도, 결핍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별다른 계획 없이 동네를 걷다가
서점에 들렀다.
책이나 조금 보다 집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서가 한쪽에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사람이 쓴,
제목 그대로의 책이었다.
자리에 서서 책을 펼쳤고,
생각보다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갔다.
물건을 줄이고,
삶을 단순화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책을 덮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미 만족하고 있었고,
내 삶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 집을 다시 바라보았다.
14평의 작은 집은
생각보다 많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홍차에 빠져 있었다.
수집하고 있었던
각 나라의 다양한 향기들의 홍차들과
그에 어울릴 법한 찻잔들이
어느새 서랍과 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하며
모아둔 물건들도 여기저기 많았다.
집은 작았고,
물건을 많았다.
갑자기 답답하다는 감각이
또렷해졌다.
그날부터
나는 물건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눠주고, 버리고, 팔고.
생각보다 빠르게 집은 비워졌다.
욕심없이 소박하게, 단순하게
산다는 건 어떤걸까?
여백이 생긴 우리집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집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공간은 단순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단순해지지가 않았다.
내 안에서는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고 싶어졌고
플라스틱이 아닌
면으로 만든 옷을 입고 싶어졌고
비누도 화장품도
가능하면 천연소재들로
직접 만들어 쓰고 싶어졌다.
배달음식을 시키는 대신 요리를 시작했고
음식을 만들다보니
내가 먹을 채소를
직접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게 궁금했고
냉장고 없이 사는 방법도 있다는데 , 별게 다 궁금했다.
비운다는 말과는 다르게
내 삶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났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말,
'자급자족'이라는 말,
'반농반X'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어느 새
그런 삶을 살지 못해
조급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