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상한 문화와, 실제로 한 일 사이

균열이 시작되던 자리

by 산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나는 꽤 들떠 있었다.


문화기획이라는 말은

내가 상상해 온 삶과 닮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공간을 채우고,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직원들은 대부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었고,

회사는 국가지원사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공모가 뜨면

기획서를 쓰고,

심사위원의 입맛을 예상하며

문장을 고쳐썼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선정될 만한 일을 기획해야 했다.


나는 젊은이들을 모아

무언가를 만들어보자고 상상했지만


실제로 내가 한 일은

지역 노인 대상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었고,

골목에 꽃과 나무를 심는 사업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꽃집 사장님을 모셔

꽃꽃이 수업을 열고,

출석 체크를 하고,

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일들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문화'와는

결이 달랐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문화기획이라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워크숍을 다니며

멋있어 보였던 장면들만 붙잡은 채,

그 이면의 구조와 행정,

예산과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상은 컸지만

역량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더 복잡했던 건

돈의 구조였다.


지원사업 예산 안에서

인건비를 돌리고,

회사 몫을 남기고,

다음 공모를 준비하는 방식.


직원들의 월급도

사업 선정 여부에 달려 있었다.


어린 직원들이

계약과 급여 앞에서

늘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퇴사를 하겠다는 직원에게

퇴직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려는

대표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리고 돌아온 말은,

"니가 뭔데 나서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이 조직안에서

조용히 따르지 않는 사람,

조금은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걸.


나는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었지,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사업을

정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아직

무엇이 문화기획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간극이

서서히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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