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채용, 직함, 그리고 회복되는 자존감
시골로 내려오며
나는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다.
원래 하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
서울에서 하던 일은
안정적이었다.
나는 그 일을 꽤 잘했고
인정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늘
설명이 필요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내가
부모를 상담하며 공감하는 순간들.
일은 잘했지만
스스로 완전히 당당하지는 못했다.
내가 평생 찾고 싶어 하던 ' 적성'은'
아직 만나지 못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시골까지 내려와서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의 모습은
남들에게 보이기에 조금 부끄러웠다.
시골에 온 김에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구인 사이트를 뒤졌다.
아르바이트 공고는 많았지만
'회사'라고 부를 만한 곳은 드물었다.
그러다
문화기획을 한다는 작은 회사를 발견했다.
문화기획.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근교에 귀농한 한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농가 레스토랑.
다품종 소규모 농사를 지어
그 수확물로 채소 요리를 내는 곳이었다.
나는 그 집의 음식을 좋아했고,
그 부부가 삶을 꾸려가는 방식을 정말 좋아했다.
그들은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고
지방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요리와 생활기술들을
서울에서 강사를 초청해
워크숍으로 열었고,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모아
작은 플리마켓을 기획했다.
나는 거의 매번 그 자리에 있었다.
워크숍에 참석하고,
플리마켓을 돕고,
나도 셀러가 되어
안 쓰는 물건들을 팔아보기도 했다.
그 부부를 중심으로 모이던 사람들은
다들 단단해 보였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고,
자기 공간이 있고,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덩달아 나도 뭔가
있어보이는 사람 같았다.
문화기획이라는 단어는
그들과 닮은 결을 가진 일처럼 느껴졌다.
마침
내가 사는 지역에도
귀촌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나도 그런 흐름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나, 시골 내려가서 문화기획해.
그 말은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 길로 바로 지원했다.
면접은 길지 않았다.
서울의 누구나 알만한 대학 졸업,
전문 영역에서의 경력,
젊은 나이에 귀촌을 결심한 이력.
대표는 이력서를 몇 장 넘겨보더니
거의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시골의 작은 문화기획 회사의
기획팀장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