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시스템의 ‘고장’이 아니라 ‘신호’다

갈등을 드러내지 않는 한국의 문화

by 더디맨

조직에서 갈등은 ‘문제’로 불린다. 문제가 없는 상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갈등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갈등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에 속한다.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리더는 말한다.


“분위기 흐리지 말고, 그냥 잘 지내봐.”

“그 문제는 개인 간 감정이니까 알아서 풀어.”

“우리가 갈등 조정하자고 있는 조직이 아니잖아?”


많은 조직에서 갈등은 감정의 충돌, 협업의 실패, 또는 조직문화의 파열음으로 인식된다. 되도록 감추거나 무시하고, 드러난 갈등은 빠르게 ‘해결’ 해야 할 문제로 다룬다. 하지만 체계론적 관점에서 보면 갈등은 고장이 아니라 ‘신호’다. 어딘가 시스템 내부의 균형이 깨졌고, 관계의 흐름이 틀어졌으며, 구조의 정렬이 어긋났다는 경고음일 수 있다.


갈등은 구조의 틈에서 발생한다


갈등은 단순한 의견 충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감정이나 성격, 책임 회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항상 구조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 역할이 중첩되었거나,

• 경계가 애매하거나,

•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거나,

• 서로 다른 기대와 목적이 충돌하거나,


이런 구조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즉, 갈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상태를 드러내는 감각 기관이다. 감정은 조직 시스템이 보내는 언어 없는 메시지이고, 갈등은 그 메시지가 일정 선을 넘었을 때 발생하는 ‘몸의 통증’이다. 몸이 아플 때 통증을 억누르는 약만 먹는다면 병은 더 깊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갈등을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그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사실 ‘관계’에 대한 명확한 학문적인 정의는 없다. 그러나 관계라는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왜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사례 : 말하지 않는 팀

한 조직의 팀 회의에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지연되어도, 일정이 무리해 보여도, 누가 봐도 비효율이 눈에 뜨이는데도…

모두 침묵했다.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팀 같지만, 실상은 ‘말하지 않는 갈등’이 팽배해 있었다.

왜 말을 안 할까?


“과거에 말 꺼냈다가 찍힌 적이 있어요.”

“다들 불편하게 생각하지만 누군가 먼저 말하진 않죠.”

“어차피 팀장은 자기 생각대로 할 거예요.”


이것은 개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다. 팀 안의 심리적 안전감, 기대-보상의 불일치, 위계적 소통 패턴, 그리고 공식적 구조와 비공식 권력 간의 충돌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이 팀의 문제는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굳어지게 되었는가’ 다.


갈등 발생의 메커니즘

외부 상황에 대한 개인의 인식과 해석의 차이는 매우 다양하다. 똑같은 사과를 보아도 어떤 이는 ‘빨갛다’는 색깔을, 또 어떤 이는 ‘백설공주’를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과 해석을 차이를 바탕으로 극히 개인적인 욕구가 만들어지고, 욕구 충족의 여부에 따라 긍정적인 감정 또는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자기 조절 능력의 정도에 따라 자신감 또는 무력감을 만들어 내고, 자신감은 욕구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만족감을 이루어 내기도 하지만 무력감은 좌절, 공격, 회피 등 부정적인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조직 내에서의 ‘관계’는 필연적이며, 상호 간의 작용과 반작용은 늘 발생한다. 상호작용 속에서 욕구, 가치, 이해관계, 신념, 역할 간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 상태가 바로 갈등이며, 갈등은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변화의 신호’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을 해석하는 새로운 렌즈

체계론적으로 갈등을 해석하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갈등을 일으킨 원인을 짚어내려는 ‘탐색’이 아니라, 갈등이 발생한 ‘조건’을 함께 들여다보는 ‘관찰’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가능해진다.


• 이 갈등은 어떤 구조적 긴장의 표현인가?

• 역할이나 경계, 기대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없는가?

• 외부 시스템(예: 다른 부서, 상위 조직)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는가?

• 이 갈등은 팀의 흐름 중 어느 지점에서 막혀 있음을 말해주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갈등을 제거할 문제가 아닌 시스템 조정을 위한 단서로 삼는 과정이다.


관계형성과 갈등의 발전과정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에 있어 첫 대면은 매우 중요하다. 첫인상이 어떠한가에 따라 관계지속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좋다면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고, 상호 욕구충족이 진행된다. 이후 ‘이 사람과 계속 관계를 맺어도 좋겠다’라는 자기 내부의 심리적 계약단계를 거치게 되며, 상호 신뢰가 쌓이면 관계는 지속되는 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공통점도 증가하는 반면 차이점도 증가하게 되므로 갈등의 요소 매 단계마다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충족되지 못하거나, 불만족이 발생하면 곧바로 관계는 단절로 이어진다. 물론, 기업조직 내에서는 임의로 관계단절을 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관계단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 업무상으로는 마치 관계의 단절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비협조, 질시, 험담, 냉소, 무반응 등 부정적인 행동이 표출되곤 한다.



정리하며 – 갈등을 ‘조직의 감각’으로 보다


갈등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갈등은 구성원 간의 충돌이 아니라, 시스템이 “이 구조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라고 보내는 신호다.

체계론적으로 갈등을 다룬다는 것은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그 신호의 구조적 맥락을 해석하며, 필요한 연결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갈등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흐르게 할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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