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권한, 기대를 재정렬하다
성과가 멈추는 팀, 갈등이 반복되는 팀에는 공통적인 현상이 하나 있다. 누가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할의 중첩, 누락, 충돌이 빈번하다. 이때 발생하는 갈등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구조적 불일치에 가깝다. 팀 구성원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겹치거나, 서로를 침범하거나, 공백이 생긴 채 방치되는 것이다.
팀 안의 갈등은 ‘역할의 경계선’에서 생긴다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
조직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다.
“그건 원래 A팀에서 하던 거 아닌가요?”
“전 그냥 전달만 했을 뿐이에요.”
“저한테 지시하신 적 없는데요?”
“왜 자꾸 저만 시키시는 거죠?”
이러한 말들은 단순한 방어적 반응이 아니라, 구조가 주는 불편감에 대한 신호다. 즉, 구성원은 ‘역할’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권한의 한계를 설정하는데, 이 경계가 불명확하거나 일관되지 않으면 역할 갈등(role conflict)이 발생한다.
역할의 세 가지 위기
Systemic Team Coaching 관점에서 보면, 팀 내 갈등의 상당수는 역할의 위기로부터 촉발된다. 대표적인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역할의 중첩 (Overlap)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
권한과 책임의 중복은 “누가 진짜 결정권자냐”는 경쟁을 불러온다
결과: 갈등, 눈치 보기, 불필요한 충돌
2. 역할의 누락 (Gap)
해야 할 역할이 아예 정의되지 않았거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
리더는 “왜 이걸 아무도 안 했냐”고 말하지만, 팀원은 “누구 일인지 몰랐다”고 말한다
결과: 무임승차, 책임 회피, 실수 반복
3. 역할의 충돌 (Conflict)
두 역할 간에 기대가 정반대일 때 생기는 상태
예: ‘고객 만족’을 중시하는 서비스팀 vs. ‘수익 극대화’를 요구하는 영업팀
결과: 상호 비난, 분열, 방어적 커뮤니케이션
13개 부서의 틈바구니에서 – 생산관리의 역할
생산관리 부서에서 생산계획을 수립하던 시절이었다. 많을 때는 13개 부서(기능조직)의 자료를 취합해야만 월간 생산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영업부서에서는 판매계획을 받고, 자재부서에서는 재고 수량을, 그리고 구매부서에서는 원부자재 수급일정을 받고, 신설되는 라인의 완공 및 시운전 계획을 설비증설팀에게 받아야 했으며, 기존 라인의 PM계획은 보전, 계전, 공무팀에게 받아야 했다. 심지어 인사팀의 인원 수급계획도 필요했다. 이 중 하나라도 제 때에 자료를 받지 못하면 계획을 수립할 수 없었고, 매월 말일까지 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생산부서는 난리가 났다. 내일이 1일인데 대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냐며 호통을 쳤다.
영업부서는 고객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제품을 공급해 줄 수 있도록 재고를 많이 쌓아두기 원했고, 자재부서는 재고비용 때문에 적절한 생산을 원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잘 맞추려면 소량생산 방식으로 생산계획을 수립해야 했지만, 생산부서는 잦은 Job change(기종변경)에 늘 푸념을 늘어 놓았다. 품질부서는 Spec에 미달되면 *LOT Out 을 가차없이 때렸지만, 생산부서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영업 입장에서는 Lot Out된 제품을 전수검사해서라도 공급물량을 맞춰 주길 원했지만, 잔업까지 해야 하는 생산부서 입장에서는 그것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무리한 생산은 안전사고와 품질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을 증가시켰고, 이는 관련부서의 간섭과 통제를 유발하여 결국 생산부서는 이중, 삼중으로 피곤해 지는 것이다.
이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임원은 오직 사장 뿐이다. 가끔 윗사람의 한 마디가 모든 갈등을 잠재우기도 하지만 매월마다 사장님에게 중재 요청을 해달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 상반되는 요구사항으로 부서 간의 갈등은 늘 상존하지만 이들 모두는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나름 열심히 일하는 구성요소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전쟁터 : ‘역할’이라는 무대
‘역할(ROLE)’이라는 말의 어원은 연극에서 왔다. 배우는 각자의 대본에 따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관객은 그에 반응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역할은 ‘기대된 행동’을 담고 있는 하나의 대본이다. 그런데 이 대본이 명확하지 않으면, 무대 위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 서로 같은 대사를 반복하고,
• 누구는 대사를 잊고,
• 누구는 상대의 말에 끼어들고,
• 결국은 진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다.
조직의 혼란도 마찬가지다. 역할이 명확하지 않으면 행동의 기준이 사라지고, 관계의 긴장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사람은 더 조심하고, 방어하고, 결국 에너지를 갈등에 소진하게 된다.
역할 갈등은 구조의 신호다
많은 리더가 “그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체계론적 코칭(Systemic Coaching)에서는 이렇게 되묻는다.
“그 갈등이 생긴 구조는 어떤 관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관계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진짜 해결의 출발점이다. Systemic Coaching에서 ‘Clarifying’은 단지 역할 정의를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 기대의 정렬,
• 경계의 명확화,
• 역할 사이의 연결성 회복이라는 시스템 정렬 작업이다.
갈등고조를 조기에 막아라
갈등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갈등이 고조되는 단계는 긴장 – 입씨름 – 행동 – 편짜기 – 체면깍기 – 위협 – 피해 – 파멸 – 공멸의 9단계가 있다.
반드시 모든 단계를 거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이 순서를 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갈등고조를 조기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의 초기에는 조정이 가능하며 이는 갈등 당사자가 Win-Win의 구조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편짜기 단계에 들어가면 갈등관리는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갈등고조의 마지막 단계는 ‘공멸’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진흙탕 개싸움’이 되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많이 보아 왔다. 물론 기업조직 내에서 부서 간의 갈등의 ‘공멸’ 상태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갈등 당사들자의 공통된 상위 직급자가 존재하여 비록 강압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중재나 조정을 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감사부서도 갈등고조 방지에 한 몫을 하기도 한다. 마치 일반사회에서 법원과 같은 역할이다. 자칫 쌍방과실이 될 수 있어 서로 공멸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애 할 것은 갈등으로 인한 기회손실비용이다.
조직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이건 누가 책임지는 겁니까?”.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조직은 이미 흐름보다 방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책임은 명확히 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물론이다. 그러나 그 책임이 구조적으로 설계되지 않고, 사후적으로 따져지는 형태로만 작동한다면, 그 순간 팀은 정지 상태로 들어간다. 책임이 ‘부여’가 아닌 ‘떠넘김’이 되는 순간, 팀이 흐르지 않을 때, 구성원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 “제가 할 일이었는지 몰랐습니다.”
• “그건 OOO 과장님이 전에도 하셨던 거라서요.”
• “그건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예요.”
•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다들 괜찮다고 했잖아요.”
이러한 말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지점을 향한다. ‘책임의 구조’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팀이 성숙해지려면 구성원 간 책임 전가보다 먼저 책임의 합의 구조가 필요하다.
세 가지 책임 충돌의 유형
1.무임승차 (Free Riding)
- 누군가는 ‘언제나 맡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 누군가는 “저건 늘 저 사람이 하던 일이니까”라며 나서지 않는다.
- 결과: 불균형한 에너지 소비, 상대적 박탈감, 소진(burnout)
2.책임의 공백 (Responsibility Void)
- 아무도 그 일을 맡지 않았고, 책임자도 모른다.
- 긴급한 일이 터져도 “그건 누구 소관이죠?”부터 찾는다.
- 결과: 빠른 대처 불가, 조직 리스크 증가, 혼란 증폭
3.책임 착취 (Role Exploitation)
- “그건 네가 잘하잖아”, “네가 하면 금방 끝나니까”
- 특정 구성원에게 역할 이상으로 책임이 몰리는 구조
- 결과: 일부 인원의 과부하, 신뢰의 균열, 사직/갈등 유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책임을 설계하라
Systemic Team Coaching의 관점에서 보면, 책임은 사후에 따지는 대상이 아니라 미리 구조화해야 할 자원이다. ‘Clarifying’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했냐?”가 아니라,
• 누가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한 상호 이해,
• 결정권, 실행권, 결과 책임의 일치 여부
• 권한 대비 기대 수준의 현실성이다.
조직은 흔히 ‘이건 네가 하기로 한 거잖아’라는 식으로 책임을 후속적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진짜로 작동하는 팀은, 책임과 역할의 의미를 ‘미리’, ‘함께’, ‘명확히’ 정하는 문화를 가진다.
책임은 구조이고, 관계다
“이건 네가 책임져야 해.”라는 말은 한 사람을 지목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 구조 안에서의 역할 분배에 대한 말이다.
Systemic 시각에서는 이를 다음처럼 바꾼다:
• “이 역할은 지금 이 팀 안에서 누구와 연결되어 있나요?”
• “당신은 어떤 경계를 담당하고 있고, 어떤 흐름에서 영향을 주고 있나요?”
• “그 책임은 당신에게만 있는 건가요, 아니면 공유되는 건가요?”
책임은 결국 상호작용의 연결 고리다. 그 연결이 일방적이거나 단절되어 있다면, 팀은 흘러가지 않는다.
“팀이 잘 안 굴러가요.”, “구성원들이 왜 이렇게 책임을 회피할까요?”, “같은 회의를 계속 해도 진전이 없습니다.” 이런 말이 반복될 때, Systemic Team Coaching은 문제의 본질을 사람의 의지가 아닌 ‘구조’에서 찾는다. 바로, ‘Clarifying’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팀이다. Clarifying은 팀의 구조를 정리하는 중요한 개입이며, 세 가지 핵심요소로 구성된다. 바로 역할(Role), 권한(Authority), 기대(Expectation)이다. 이 셋이 정렬되지 않으면 팀은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마찰’을 겪는다.
① 역할 (Role): “나는 팀 안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가?”
역할은 단지 직무(job description)가 아니다. 팀 내에서 내가 어떤 경계를 맡고 있고, 어떤 흐름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말한다.
• 어떤 자원이 내게 연결되어 있는가?
• 어떤 정보를 내가 전달해야 하는가?
• 나의 행동은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역할이 모호하면 사람들은 ‘선’ 안에 머물려고 하거나, 선을 넘으며 부딪히게 된다. 이때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주지 않은 팀 시스템이다.
[코칭적 개입 질문]
“당신의 역할은 팀 안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된 것인가요?”
② 권한 (Authority): “나는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
권한은 흔히 위계와 연결되지만, 역할에 따른 자율성과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결정하지 못하고, 위만 바라보게 된다.
• 내가 이 일을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
• 결정 후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가?
• 타인과의 조율 권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권한 없는 책임은 스트레스이고, 책임 없는 권한은 불신의 씨앗이다. Clarifying은 이 둘을 구조 안에서 정렬시키는 작업이다.
[코칭적 개입 질문]
“당신은 지금 어떤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없다고 느끼시나요?”
③ 기대 (Expectation): “다른 사람들은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역할과 권한이 같아도, 기대가 다르면 갈등이 생긴다. 기대는 종종 말로 표현되지 않고 암묵적으로 작동한다. “그 정도는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이 정도는 눈치껏 해야죠”라는 말이 그것이다.
• 팀장은 구성원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 구성원은 서로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가?
• 조직은 이 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기대의 불일치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며, 때로는 신뢰의 균열로까지 이어진다. Clarifying에서는 이 기대를 ‘말로 끌어내고, 서로 확인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코칭적 개입 질문]
“당신은 팀의 누구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나요?”
“그 기대는 상대도 알고 있었을까요?”
정렬의 3요소를 그려보자
다음은 Clarifying을 팀 회의나 코칭 세션에서 시각화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 세 가지를 화이트보드나 도표에 놓고 구성원과 함께 논의해보면, 놀라울 만큼 많은 불일치와 오해, 불균형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팀은 신뢰, 투명성, 예측 가능성이라는 흐름을 회복하게 된다.
주) * LOT Out : 샘플링 검사를 통해 LOT(생산품의 일정 단위물량) 전체를 불량으로 판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