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학사모, 인생의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를 찍다.
30년 넘게 쉼 없이 달려온 공직 생활의 끝자락에서, 나는 비로소 내 인생에 고요하고 평온한 '쉼표'가 찾아올 줄 알았다. 까만 학사모를 다시 쓰고 졸업사진을 찍던 날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퇴직 후의 풍경은 늘 그려왔던 대로 선명했다. 하얀 캔버스 위에 서툰 그림을 그리며, 낯선 여행지에서 셔터를 누르며, 평소 배우고 싶었던 작은 악기의 선율에 젖어 드는 날들. 그것이 내가 30년 넘게 고생한 나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정년퇴직의 보상이었다. ‘퇴직을 하면 한두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해 쉬어야지!’라는 생각은 지친 나를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삶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가장 가혹한 방향으로 찾아온다. 공로연수를 불과 몇 주 앞둔 어느 날, 내가 평생 일궈온 삶의 결실들이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내가 신뢰했던 가까운 지인의 투자 권유에 나는 잘 알아보지 않고 많지 않은 전 재산과 빚까지 내어 투자했다. 평생 공직에만 몸담아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나의 순진함은 벼랑 끝으로 나를 내몰았다. 은퇴 후의 여유를 보장해 줄 줄 알았던 투자금은커녕, 무리하게 낸 대출금의 무게만이 나를 짓눌렀다. 1년 전, 평소 신실했던 그 지인을 믿고 원금과 이자가 들어오는 재미에 취해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녀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는 연금 같은 투자처라는 말은 나를 무너뜨리고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분노와 자책,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멸이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 평안해야 할 공로연수 기간에 나는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넉넉히 베풀며 즐겁게 살아가던 어제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며 칩거하는 초라한 한 사람만 남았다. 멍하니 보낸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세상은 멈췄고 나는 길을 잃었다. 아이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엄마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이의 학업과 정서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만이 나를 간신히 붙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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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나의 쉼 없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1월부터 3월까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매일 8시간씩 강의와 실습에 매달렸다. 화요일이면 저녁 9시 30분까지 실버인지활동지도사 및 레크리에이션 강사 과정을 공부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3월부터는 전문대 '외식창업 조리학과'과정에 입학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종일 학교 수업에 매달렸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온종일 봉사하며 영적인 힘을 보충했다. 주중에는 다시 강의와 운동, 매일 하나씩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기록하는 미션을 수행하며 나 자신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기 이전에, 나약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5월에 요양보호사, 6월에 실버인지 활동 지도사 자격증을 따내고 10km 마라톤 대회까지 신청하며 나는 쉬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던 육체는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극심한 피부 가려움증과 다리 통증이 시작되더니, 급기야 면역력이 바닥을 치며 대상포진이 나를 덮쳤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간과한 결과였다. 결국 여름방학 동안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의사의 권고로 마라톤을 포기하는 대신, 나는 '황토 맨발 걷기'라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한 시간 이상씩 황토의 전기를 맨발로 느끼며 3주가 지났을 때, 기적처럼 가슴과 등의 가려움증이 순간 사라졌다. 육체의 치유는 마음의 치유로 이어졌고, 나는 맨발 걷기의 전도사가 되어 다시 2학년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겨울방학에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양식, 떡 제조, 제과제빵 기능사까지 연달아 도전했다. 그 과정 중에도 경제적, 정신적 위기는 수시로 닥쳐왔다. 때로는 정신과 상담을 고민할 만큼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곁을 지켜준 가족과 지인들의 기도 덕분에 결국 졸업 작품전인 캡스톤 디자인까지 멋지게 마칠 수 있었다.
퇴직 후 내가 원했던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지난 2년이 흘러갔다. 예상치 못한 풍랑에 휩쓸려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이었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 풍랑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더 깊은 곳까지 데려다주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고,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30년 공직 생활의 마무리에 다시 쓰게 되는 이 학사모는 지난날의 고통에 찍는 마침표가 아니다. 오히려 내 인생의 2 막을 알리는 당당한 '느낌표'다.
지금의 나는 웃을 수 있다. 비록 내일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고 성공이 보이지 않는 무모한 도전이 계속될지라도, 나는 이제 두려워 숨지 않을 것이다. 60세, 나의 진짜 인생은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의 또 다른 느낌표를 찾아 힘차게 걸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