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나에게 건네는 가장 낮은 목소리
마지막 퇴근길, 차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33년 동안 수천 번도 더 오갔던 길이었지만, 그날의 노을은 유독 붉고 무거웠다. 사무실을 나오며 받았던 화려한 꽃다발은 뒷좌석에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동료들의 박수 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차 문을 닫고 혼자가 된 그 좁은 공간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환희가 아닌, 적막에 가까운 고요였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난 33년 동안 누구로 살았는가?' 행정가, 교육자, 민원 해결사,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 수많은 이름표가 나를 정의했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그 이름표들의 무게에 눌려 숨을 죽이고 있었다. 타인이 건네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은 성실히 완주한 경주자에 대한 예우였지만, 정작 내 영혼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은 그보다 훨씬 낮고 은밀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화장을 지우고,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거울 속의 여자와 눈을 맞춘다. 33년 전,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고 첫 출근길에 올랐던 설렘 가득한 청년은 간데없고,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낸 한 여자가 서 있다. 그 여자의 손은 민원인의 서류를 넘기느라 거칠어졌고, 그 눈은 정해진 법규와 원칙을 지켜내느라 늘 팽팽하게 긴장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입술을 떼어 거울 속의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애썼다. 정말이지, 참으로 애썼다."
이 말은 "수고했어"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진 탄식이었다. 남들의 눈에는 당연한 공직 생활이었겠지만, 그 안에서 겪어야 했던 무수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남몰래 삼켜야 했던 눈물들을 나는 안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밤들, 누군가의 비난을 묵묵히 받아내야 했던 낮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집으로 돌아와 다시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그 치열함을 나는 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괜찮아. 더 잘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평생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산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제2의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우리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33년의 마침표를 찍은 이 순간, 내가 나에게 주어야 할 가장 큰 선물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보다 '이제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33년 동안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을 위해 내어주었던 내 시간을 이제는 오롯이 나에게 돌려주어도 괜찮다는, 그 정당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대화였다.
"남을 위해 살았던 졸업장은 저 문밖에 두고 오자. 이제는 네가 숨 쉬고 싶은 대로 숨 쉬고, 걷고 싶은 속도로 걸어도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아."
이 낮은 목소리의 대화는 독백이었지만, 그 어떤 웅변보다 강력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상실의 슬픔이 아니라,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이자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했다는 신호였다. "괜찮아"라는 말 안에는 사소한 실수에 밤잠 설쳤던 나에 대한 용서가 들어 있었고, "애썼다"는 말 안에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나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었다.
독자들도 언젠가 인생의 커다란 문을 닫아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타인의 박수 소리에 취해 정작 자기 자신을 외롭게 두지 말길 바란다. 화려한 퇴임사보다 중요한 것은, 어두운 방안에서 스스로를 가만히 안아주며 건네는 "정말 고생 많았고, 이제는 마음 편히 쉬어도 괜찮아"라는 낮은 속삭임이다. 그 대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라는 무거운 옷을 벗고 '진짜 나'라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내 인생의 1막은 33년의 근속 훈장으로 마무리되었지만, 2막은 이 따뜻한 자기 위로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맞춘 '성공한 퇴직자'가 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나 자신에게 매일 "오늘도 네 마음이 편안하면 그것으로 충분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스스로와 가장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여운이 오늘 밤, 나의 잠자리를 그 어느 때보다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33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