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장

무너진 모래성 위에서 부르는 모정(母情)

by 난향C

33년의 마침표는 눈부신 은퇴식과 평온한 여행,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수채화 물감을 꺼내는 일일 줄 알았다. 퇴직을 앞둔 나의 일기장에는 가보지 못한 이국적인 도시들의 이름과, 배우고 싶었던 작은 악기들의 목록이 설레는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 치열했던 운전면허시험장의 겨울바람을 견딘 대가로,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계절'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운명은 가장 잔인한 타이밍에 가장 믿었던 사람의 손을 빌려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평소 가족처럼 믿고 의지했던 지인의 제안은 달콤했다. "퇴직 후의 안정적인 삶은 물론, 아이에게까지 상속할 수 있는 확실한 투자처"라는 말은 평생 자식 걱정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던 엄마의 마음을 단숨에 흔들었다. 늦게 얻은 선물 같은 아이, 내 목숨보다 귀한 그 아이에게 조금 더 탄탄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나의 눈을 가렸다. 나는 평생을 일궈온 작은 자산은 물론, 은행 대출까지 받아 그 지옥의 아가리에 쏟아부었다.


처음 1년은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이자는 나를 안심시켰고, 나는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이제 우리 아이 걱정은 덜었구나." 하지만 퇴직을 고작 한 달 앞둔 어느 날, 그 모든 평온은 일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지인의 목소리는 끊겼고, 투자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기'라는 두 글자가 내 인생의 문법 속으로 난입했을 때, 세상의 중력은 거꾸로 뒤집혔다.


전 재산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괴롭힌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33년을 공직자로 살며 법과 원칙을 지켜온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처럼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은퇴 후 아이와 함께 멋진 사진을 찍고 수채화를 그리며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려던 계획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증발해 버렸다. 수중에 남은 건 갚아야 할 막대한 빚과, 무너진 자존감의 잔해뿐이었다.


나는 칩거에 들어갔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방 안에서 나는 유령처럼 배회했다. 불면증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거식증이 시작되었다. "왜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이 천장을 가득 채웠다. 정신이 무너지자 몸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면역력이 바닥난 몸에 '대상포진'이라는 지독한 낙인이 찍혔다. 피부 위로 타오르는 듯한 통증은 흡사 내 속죄의 불길 같았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 하면 전기에 감전된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휘저었고, 거울 속에는 33년의 내공은커녕 생기를 잃은 껍데기만 남은 노파가 서 있었다. 내 몸이 보내는, 아니 내 영혼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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