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갈래?
게임하는 뒤통수, 먹는 뒤통수, 자는 튀통수, 게임하며 먹으며 안자는 뒤통수... 뒤통수만을 실컷 보며 지내던 어느날 고심이가 말했다. 북유럽 갈래?
큰뒤통수(이하 큰통수)는 여전히 뒤통수를 보이며 그러든지, 하고 대답했다. 국수 먹으러 갈래? 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작은뒤통수(이하 작통수)는 그야 좋지... 했는데, 솔깃하지만 무심한 척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어디야, 20대 청년이 엄마와 여행을 가겠다는 게. 잘못 들은 건 아니지? 고생하더니 뒤늦게 효도 받네. 주변의 프리뷰였다.
아니 받다니, 내가 주는 게 아니고? 그들은 이 현상을 뒤통수들이 가 ‘주는’ 것으로 단호히 해석했다. 근데 괜찮을까... 즐겁다는 보장이 없.., 내 일은 아니니까 뭐..., 소극적인 응원(?)도 있었다.
어릴 때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큰통수가 보자기를 망토처럼 휘날리며 ‘널 고통스럽게 해주마’하고 공격하면 작통수가 ‘나도 널 공통(?)스럽게 해주마’하며 비장하게 받아치던 시절이었다.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비행기도 탔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겠다고 전력질주하고 장시간 차에 시달려도 내리면 금세 생기가 돌던 흔적들이, 컴퓨터에 미어터지도록 남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청소년 시절이 그렇다. 그 시간을 다소 터프(?)하게 지나면서 많은 걸 잃어버렸다. 조금 지혜로웠으면 좋았으련만... 불합리한 상황, 부조리한 제도에 족족 낚여 상처를 입었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어릴 때부터 길러오던 풍부한 상상력이나 섬세한 감각은 난관을 만나니 오히려 상처를 잘 입는 기질로 뒤집혀 버렸다. 사막 같은 시간이었다. 큰통수는 자신의 동굴로 들어가 버렸고 작통수는 모든것에 지쳐 나가떨어져 있었다. ‘뒤통수’로나마 곁에 있는 걸 감사해야 하나.
무심하고 무감각하고 무표정한 관계들이 굳어져 갔다. 그들 내면은 무사했을까. 분노가 밖으로 나오면 폭력이 되고 안을 향하면 무기력이 된다는데. 자신을 공격하는 최대의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 아무것도 살지 않는 것이니까.
오랫동안 뒤통수만을 보노라면 고심이는 불안해지곤 했다. ‘내가 보는 뒤통수들이 미디어에서 말하는 어떤 위험성의 표식 아닐까.’ 그야말로 이들은 ‘이대남’ 아닌가. 무심, 무감각, 무표정. ‘무’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상태 같은데, 어느 순간 무언가가 끌어당기면 맥없이 끌려갈 수도 있다. ‘무’ 안에 외로움이 들어 있으니까.
다른 위험한 것들에 끌려가기 전에, 매력은 덜하지만 위험 또한 덜한 고심이가 뭐든 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무’에 틈을 내고, 공기를 흘려보내고 탄성을 회복하는 시도라도 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낯선 곳을 걷다 보면 정신이 좀 들겠지. 새로운 걸 보고 먹고 나누다 보면 그 모든 게 어떤 계기라도 되어 줄지도 몰라. 지금까지는 무언가에 말려 스텝이 꼬였다면, 이제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여행 따위가 그런 출발선이 된다면 북유럽이 아니라 북극이라도 가는 거지. ‘추억’으로 남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