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여자가 20대 남자에게 말 거는 법/잇는말

이후 이어지는 내용들

by 리영

((12화 이후 이어지는 원고 안의 생각들을 미리 간추려 보았습니다. 이후 계속 문장으로, 글로 풀어가겠습니다.))


통수들이 스톡홀름의 호숫물에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현지인처럼

고심이는 그들의 신발을 지켰다. 어릴 때 수영장과 축구장과 스케이트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프레임 속에서 큰통수가 시크하게 물살을 갈랐다. 작통수가 오리떼와 경주를 했다. 폼이 엉성해도, 헛볼을 차도, 넘어져도 한없이 격려 받던 시절의 모습이 잠시 얼굴에 스쳤다. 간직하고 있었구나.., 먼 곳에 와서야, 우연히 물을 만나고서야 그 환함이 드러나다니.


그런 게 있어빌러티는 아니야

우버 택시를 탔다. 통수들은 번번이 팁 란에 체크 없이 택시 내리길 주저했다. 고심이는 기사에게 주는 팁이 아깝다. 그건 그냥 숫자가 아니라 남편의 수고가 변환된 무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유럽은 팁 문화가 일반적이지도 않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서 고심이와 통수들이 자꾸 나뉘었다.


몸이 고될수록 정신이 간단해지는 날들

눈 뜨면 어젯밤 사 온 빵과 커피를 먹고, 정해진 장소로 가고, 열심히 체험하고, 점심을 먹고, 또 체험하고, 사람과 자전거와 차들 사이를 걷다 보면 노을이 지고, 다시 걸어 숙소로 돌아오면 주저 없이 잠드는 날들. 번민이라고는 걸을 것인가 탈 것인가. 저녁을 먹고 들어갈 것인가 들어가서 먹을 것인가 정도에서 끝나는 날들. 문득 이런 날들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참 많이 걸었다

아니 많은 말을 나누었다. 가령 버스에서 졸 때 꺾이는 뒷목을 받쳐준다든가, 좁은 인도에서 통수 중 한 명은 늘 도로 쪽을 차지한다든가, 실수로 잠긴 숙소 앞에서 주저 없이 철제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 문을 연다든가. 택시 타라고 준 카드에 두 번의 버스 요금만 찍혀 돌아온다든가.

음성이 대화의 유일한 수단이 아님을 생경하게 감각했다. 알량한 혀는 간편하지만, 깊이에서 다른 신체 부분을 못 이기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워라밸이라는 말조차 상처가 되는 세대

워도 없는데, 라는 뭐고 벨은 또 뭐란 말인가.


멀리서 보면 풍경이지만

줌인해서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사연들이다.


빨래 널듯이 몸을 너는 것 같기도 하고

갈라진 논바닥이 비를 갈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북유럽의 일광욕은, 단순히 햇볕을 쬔다는 것과는 다른 간절함이 느껴졌다. 고심이는 저 마음을 알 것 같다. 잠 못 이룬 밤을 보낸 후 햇빛 속을 수없이 걸었던 기억. 추운 날에도 소매를 걷어붙인 채, 멜라토닌이여 잠을 주소서, 한 줌의 햇빛이라도 더 모으려고 팔을 집열판처럼 늘어뜨린 채 걸었던 기억. 그들에게 햇빛은 기도 같은 건지도 모른다.


도심 속 백조는 덜 우아하다(?)

백조의 우아함은 즉각적으로는 물 위의 모습에서, 다음은 그를 유지하는 물 아래의 분투에서 온다, 그리고 고심이는 또 하나의 우아함을 봤다.

암스테르담 운하 속 백조들은, 탁한 물도 수많은 쳐다봄도 시끄러운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고개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며 나아갔다. 먹이를 구하는 것이다. 생명 본연에 충실한 그 모습이 우아했다.

살아보니 그런 우아함은 아주 필요한 것이더라. 멋지고 의미 있는 거 누가 못하나. 그런 거 없이도 꾸준히 밀고 가는 삶,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건 그런 거더라.

지금 청년에게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없었는지 크면서 잃어버렸는지...어느 쪽이든 고심이 세대의 잘못이 있으리라.

새삼 의미와 가치로 범벅해 키운 양육이 회한스러웠다.


체력이 점점 얇아진다,

약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걸 먹고 운동해도, 고심이의 몸에 힘이 머무는 시간이 짧다. 습자지 같은 몸, 머금을 본체가 없는 몸. 기본 배터리는 고장났고, 보조 배터리로 버티는 느낌이라 매번 충전하지 않으면 다음날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 알량한 재산으로 남은 기간 몸을 돌보며 생을 마무리할 수는 있겠다. 거기까지는 신세 안 질 자신이 있다. 그러고 나면 통수들과 나눌 게 없어진다.

왜 이토록 나이브하게 키웠는가. 사랑과 신뢰, 따뜻함 따위... 그게 때론 후순위로 밀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 온다는 걸 왜 몰랐나. 결핍과 냉정함과 단호함을 왜 정성 들여 가르치지 않았나. 하늘에서 집이라도, 아니 방이라도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저 몸들을 누일.

북유럽의 복지는 그런 하늘이 되어 주고 있을까.


나이 든다는 건 묻는 걸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묻는 것을

뭔가 있겠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파헤치는 것보다 묻고 품는 걸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은 성공한 걸까

알 수 없다. 몇 년 후에나 지나가는 말로 할까, 그때 좋았어 라고.

추억을 나눴다고 금세 뒤통수가 앞통수가 되진 않는다. 돌아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가오는 숙제들이 많아서 전방 주시에 온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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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은 생각과, 풍경과, 나라들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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