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3), 뭐 새로운 거 없나? 아르누보

by 리영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라는 건축가가 있단다. 고심이는 처음 들어봤다. 가우디, 르꼬르뷔지에는 들어봤는데. 김수근 건축가도.

작통수가 어떤 건물 내부 사진을 보여줬는데, 철제 나뭇잎들이 계단 난간을 휘감아 오르고 있고, 벽과 바닥에도 덩굴무늬가 이어지고 있었다.

"독특하네..."

사방이 불규칙하게 구불거리는데 지저분하지는 않고, 오히려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아르누보(Art Nouveau)야."

"아르누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건축양식이란다.

산업혁명으로 삶은 진보했는데 예술은 과거의 양식을 지리하게 되풀이하던 때다. 뭐 좀 새로운 거 없을까(Art New?)를 고민하던 부류들이 기계적인 직선을 탈피하고 자연의 곡선에 주목했다.

"꽃이나 덩굴, 곤충의 날개, 물결,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자연이나 인간에게서 갖다 쓸 만한 건 다 갖다 쓴 거야. 구불거리는 리듬에서 역동적인 곡선 디자인을 만들어낸 거지. 그걸 건축에다 쓴 게 아르누보 건축이고."

그런데 아르누보 디자인을 단순 장식으로 쓴 게 아니라 건축 구조 안에 깊숙이 녹여 냈다고 한다.

“녹여내?”

“응, 가우디 알지?”

알 거라고 생각하고 물은 걸까,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물은 걸까.

“알아.”

고심이는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축물의 기둥은 보통 직선이잖아. 가우디는 어때?”

“아 그냥 설명하세요, 묻지 말고.”

오 자연스러웠다. 가우디 건물이 구불구불한 건 알겠는데 기둥까지 그런지 확신이 없었다.

“가우디는 기둥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가 곡선이야.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믿으니까.”

그런데 그 곡선을 구조로 가져왔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파밀리아 성당 (Sagrada Família Basilica) 기둥이 위로 가면서 가지처럼 갈라지는 거 알지?”

알 듯 말 듯하다. 그냥 설명하라니까.

“꼭 한 그루 나무 같아. 하지만 나무를 흉내내느라 그런 게 아니고, 하중을 견디려면 위로 넓어져야 하기 때문이야. 나무의 겉모습을 가져온 게 아니라 나무의 구조 자체를 건물을 떠받치는 구조로 가지고 온 거란 말이지.”

아하 이해함. 그래서 가우디의 불균형하기짝이 없는 건물들이 오랜 세월 버티는구나. 건물 모양만 보면 대책없이 자유로운 영혼이구나 싶은데 속이 꽉 찬 양반이었네.

“근데 가우디는 너무 아르누보의 끝판왕이고...”

“다른 건축가도 있어? 아참 아까 보여준 건물, 누구지?”

“벨기에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야. 그분이 바로 아르누보 건축의 정석 같은 분이지. 구조는 일반적이고 합리적으로, 연결부분은 아르누보를 적극 활용한 거야.”

“어쩐지 아까 그 건물은 멀쩡해 보이더라. 하하.”

가우디는 매운맛, 오르타는 순한맛 아르누보인가?


오르타는 기둥은 기둥 자리에 방은 방 자리에, 하는 식으로 합리적인 구조를 받아들였다. 다만 그 구조들을 연결하는 방식에 아르누보 디자인을 썼다. 계단 난간을 덩굴처럼 휘게 한다든가, 기둥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을 식물 줄기처럼 처리한다든가 하면서. 그래서 각 공간들이 딱딱하게 나뉘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큰 곡선으로 연결돼 보이게 했다. 독특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브뤼셀에 있는 타셀 하우스(Hotel Tassel), 솔베이 하우스(Hôtel Solvay), 반 에트벨데 하우스(Hôtel van Eetvelde), 오르타 박물관(Maison & Atelier Horta), 네 채가 오르타의 주요 타운하우스인데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일 정도로 인정 받고 있다. 고심이도 정석에서 살짝 자유로워진 아르누보, 오르타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벨기에에도 세계적인 건축가가 있었네."


작통수는 하나라도 직접 봐야겠다며 오르타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 사이 고심이와 큰통수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가다 보니 먼저 나섰던 작통수가 언덕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반가워서 멀리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작통수 뒤로 특이한 건물 하나가 같이 찍혔다.

“어, 저런 게 아르누보... 아닌가?”

좀 오래돼 보이는 외관이 유리와 철제로 장식돼 있었는데, 덩굴 같은 곡선이 화려하면서도 정교했다.

구글이를 불렀다. 화살표를 건물 위치에 놓으니 ‘Musical Instruments Museum’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오르타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브뤼셀의 대표적인 아르누보 건물이란다. 와우, 방금 공부한 건데 바로 써먹네. 살아 있는 공부가 이런 건가.

“올드 잉글랜드? 건물 이름인가?”

큰통수가 사진을 찍다 말고 갸웃거렸다. 건물 위쪽에 ‘ODL ENGLAND’라고 간판처럼 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번엔 시침이를 호출했다. 이런 건 시침이가 잘 안다.

“음, 여기가 올드 잉글랜드라는 고급 백화점이었대. 1899년, 폴 생트노이, 아르누보 양식으로 설계, 그러다 1970년대에 폐업. 이후 복원해서 현재 악기 박물관으로 사용 중. 외관은 처음 그대로 복원하고, 내부는 현대식으로 개조했대.”

이렇게 알려주고도 시침이는 또 ‘아르누보와 현대건축의 차이를 알려 드릴까요?’ 했다. 상냥한 녀석 같으니라고.

악기 박물관도 꽤 유명하다는데, 악기 구경도 못해보고 지나간다. 그런데 이번 겉핥기는 건축 공부라도 한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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