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날이었다.
35일 동안 잘 참았던 술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날이었고, 졸업한 지 햇수로 4년이 다 되어서 다시 대학을 가겠다 결심했고 개강을 앞둔 날이었고, 그래서 원래 대학교의 교수님들이 한 분 한 분 생각났던 날이었다. 그 교수님은 학교 다닐 때의 내가 정말 피하고 싶었던 교수님 중 한 분이었다. 나는 토론 수업을 정말 싫어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강의 듣고 리포트 쓰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졸업 후 다시 대학을 가겠다 마음먹고서는 지도교수님도 아닌,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도 아닌, 유대관계가 깊지 않은 그 교수님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곧장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학점 고민 없이 수업을 들을 걸"
이 후회가 내 평생에 걸친 후회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또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을 수없는 시간 속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생이 참 덧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지도교수님은 항상 그렇게 가르쳐주셨다. 삶과 죽음은 대립관계가 아니며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교수님 이제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학부 시절에 저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참 많은 위안을 얻었었는데 이번에 이 일을 겪고 나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산 자는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게 정설인데 말입니다. 저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왜 사람은 죽어야 하는지, 또 살아야 하는지.
그건 누가 결정한 걸까요. 신일까요? 그렇다면 신은 존재하는 건가요? 그 신은 전지, 전능, 전선한 존재인가요?
어쨌든 소식을 알려준 후배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나도 이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드는 밤입니다, 선생님.
두서없는 제 말을 선생님은 그저 들어주시겠지요. 정돈되지 않은 사유로 범벅된 오늘을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받아주시겠지요.
대학 면접을 보던 날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 순간은 평생 잊히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면접을 시작하고 첫날 첫 순서였던 저에게 선생님은 면접시간 내내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셨었습니다. 여러 질문을 해주셨고, 저는 그 질문에 패기 넘치게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있냐는 말씀에 저는 치기 어린 물음을 던졌고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의 입을 빌려 온화하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마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지금도 선생님은 항상 제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수업을 듣지 않았어도 선생님은 항상 제 자랑이었습니다. 누군가 저희 과에 대해 묻거든 저는 선생님을 제일 먼저 말하곤 했었습니다. 저는 단 한순간도 우리 학교 우리 과에 들어온 걸 진심으로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취업이 힘들어도,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했어도 말입니다. 다시 돌아가도 저는 이 학교 이 과에 지원할 거고 똑같이 대학생활을 즐길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바꾸고 싶은 것은 단 한 번만이라도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비겁하게 피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피하지 말고 꼭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야지 정말 많이 다짐했지만 제 다짐에 비해 4년은 짧디 짧았습니다. 미련할 정도로 겁이 많았습니다. 늦었지만 오늘은 선생님의 수업을 꿈에서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밤입니다. 선생님 부디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