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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멘토 Oct 27. 2022

맛 없어서 못 먹겠어요


공포급식시대  &  자유급식시대



인터넷에서 자주 올라오는 화려한 학교급식 사진에  

"요즘 학생들은 너무 좋겠다. 우린 맛없는 급식을 억지로 다 먹어야 하는 공포급식의 시대를 살았는데 

맛있는 것만 골라 먹어도 되고 맘대로 남겨도 되는 자유 급식 시대에 사니 너무 부럽다" 라는 댓글이 달린 걸 본 적 있다. 


공포급식 시대... 맘대로 남겨도 되는 자유급식 시대...

과거엔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 준다는 취지로 선생님들이 참 열심히 편식을 지도했다. 

"골고루 받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먹어야 해." 

아주 소박한 급식들이었지만 급식에 대한 불평은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을 모두가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몇몇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밥 때문에 학교를 안 가려 한다. 밥을 억지로 먹이지 마라. 먹고 싶은 것만 먹게 놔둬라. 

돌이켜보면 아이들의 급식 지도가 무식하긴 했다.

어린 시절엔 다양한 맛을 즐기지 못한다. 커갈수록 미각이 더 발달하면서 맛의 세계도 확대되는 법이다. 

때문에 급식을 억지로 먹이는 건 올바른 식습관 형성에 별 효과가 없다. 

교육으로 치면 억지 주입식 교육에 불과하다. 

무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 1년간 급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던 아이들은 

다음 해에 급식을 제일 많이 남긴다.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이라도 하는 듯. 


그렇게 바야흐로 학생인권을 우선 존중하는 자유? 급식 시대가 도래했다. 

급식을 너무 안 먹는 아이들을 한술이라도 더 먹이고 싶지만 먹지 않는다. 

더 이상 먹었다간 억지로 먹였다는 항의 전화가 올 수 도 있고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을 끝까지 먹게 하는 것 또한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권유만 한다. 이거 조금 더 먹어봐. 이건 손도 안 댔네. 한 번만 먹어봐. 


아이들은 선생님의 권유를 듣지 않아 일어나는 불이익? 이 아무것도 없음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그 결과 권유를 받아들여 배식은 받되 손도 대지 않고 음식을 그대로 잔반통에 버리는 일이 허다해졌다.


요즘 아이들은 음식에 대한 소중함이 1도 없다.

귤은 까먹기 귀찮아서 안먹고, 샤인머스켓 출시 이후 씨있는 포도도 아예 먹지 않으려 한다.

귤도 샌드위치도 한 한입도 먹지 않은 것을 그대로 잔반통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깔끔하게 투척해 버린다. 귤과 샌드위치를 1개씩 더 먹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어 정작 배식량은 모자라지만 잔반통에서는 통째로 버려진 귤과 샌드위치가 여럿 굴러다닌다.


아이들이 더 먹고 싶어 줄서는 후식을 보란듯이 버리는 아이도 있다. 우월주의 과시욕이다. 니들은 고작 그런거에 환호하니? 난 이딴거 안먹어! 라고 은근한 행동으로 보여준다.  



맛 없어서 못 먹겠어요!!




이게 뭐야? 누가 귤을 이렇게 통째로 버렸어... 먹고 싶지 않으면 다시 반납이라도 하지.

퇴식구에 서 있는데 어느 학생이 샌드위치를 입에도 안 대고 가져왔길래

"한입만 먹어봐, 왜 먹지도 않고 그대로 버려?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잖아."

아이는 뒤돌아서 샌드위치의 한쪽 귀퉁이를 아주 작게 베어 물고 왔다. 

그리곤 아주 당당하게 "먹어봤는데 맛 없어서 못 먹겠어요" 

죄송한 마음은 전혀 없다. 


대환장하겠다. 

샌드위치가 하나 더 먹고 싶은 아이는 없어서 못 주는데... 

나는 이런 거 안 먹는다. 못 먹는다. 니들이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 줘야 먹을 거 아니냐... ?? 

달리 해석이 안된다. 


일단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왜 찍어요?"

왜 찍을까? 왜 찍는지 니가 생각해 봐.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당당했던 아이가 약간 움찔했다. 


사진을 찍은 이유는 식생활 수업 자료로 쓰기 위함이었다.

이건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 문제다. 퇴식구에서 간단히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차근차근 가르쳐줘야 한다. 


수업 시간에 이 사진을 화면에 띄워 보여준다.

이게 우리학교 잔반통입니다. 주인공인 아이는 애써 눈을 피한다.


선생님 누가 저랬어요? 

선생님도 기억이 잘 안나. 그런데 이 반에는 이런 학생 없지?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만약 과거에 이런 행동을 했다면 지금부터 반성하면 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그걸 고치려 노력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알면서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나쁜 행동은 부메랑 처럼 나에게 돌아와. 그게 어떤 모습 어떤 방법이든. 

그러니 앞으로 어떤 행동을 선택하든 자신이 책임져야해.

선생님은 올바른 행동을 알려주는 사람이지 일일이 잔소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야.  
대신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건 꼭 알아야 해


급식을 버리는건 자연과 환경을 오염시키는거야.

이렇게 자연을 훼손한 사람은 자연에게 공격당할 수 있어.

비오는날 벼락 맞을지 모르니 조심해.

내가 음식을 남겨 환경을 오염시켰으니 자연도 나를 공격할 수 있거든. 

내가 하는 아주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내 삶에 정확히 부메랑처럼 돌아와.






어떻게 해야 음식의 소중함을 인지 시킬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급식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조리사님은 몇 시에 출근하실까?

급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아이들은 별 생각이 없다. 그저 퀴즈의 하나로 생각한다.

이거 맞추면 선물 줘요? 치약, 칫솔은 안 할래요. 

(아마도 어느 선생님이 치약, 칫솔 세트를 선물로 준다고 했었나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서 적는 아이도 있고 장난스레 동참하는 아이도 있다.

조리사님, 영양 선생님, 교장, 교감 선생님, 행정실장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기사님, 농부, 택배 아저씨 등등을 적었다. 모두 정답이다. 그래.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학교에도 다니고 급식도 먹을 수 있는 거야, 급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여해. 백종원 아저씨? 그래 백종원 아저씨도 맛있는 레시피를 많이 알려주시니 급식에 도움을 주는 분이 맞아. 



조리사님들의 출근시간을 알아맞히는 퀴즈도 냈다.

본교 조리사님들은 7시 30분에 출근을 하신다.

이렇게 일찍부터 우리들의 급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생하고 있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 학생 1인분의 급식비는 얼마일까?

해당 퀴즈를 내는 목적은 아이들에게 급식을 돈으로 환산하면 아주 비싸며, 

급식을 버리는 건 돈을 버리는 일이고, 

돈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절대 복이 오지 않음을 교육하고 싶어서다. 


일단 학교 주변의 분식점 김밥과 경양식집 돈가스의 리얼 사진을 가져왔다.

나도 잘 몰랐는데 김밥은 3,500원 돈가스는 1인분에 8,000원이었다.

김밥, 돈가스와 함께 본교의 급식 식판(돈가스가 반찬으로 나오던 날) 사진을 붙였다.

우리 학교 급식은 밥도 주고 돈가스도 주고 샐러드에 나물, 수프와 샤인 머스켓, 김치...

여기에 오전 간식으로 우유까지 나오잖아. 그럼 우리 학교 학생 1인분의 급식비가 얼마일까?




본교의 학생 1끼 식품비는 4,000원선이다.

소규모 학교인 데다 지자체의 우수 식재료비 지원금이 있어 제법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급식비는 식품비 외 인건비 운영비 연료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나와 조리사님들의 급여 외 급식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1끼 급식비는 사실 어마한 금액이다. 



우리 학교 학생 1끼당 급식비 알마 맞추기 퀴즈에 응모하세요. 

전교생 교직원 모두 응모 가능. 당첨자는 선물 줍니다. 

아이들이 골똘히 고민해서 응모한다.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답을 적는 아이들,

꼭 맞추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몇 번이고 고쳐 쓴다.



사실 나도 정답을 모른다.

교직원도 응모가 가능하다고 했더니 대부분이 4,000원이라 적었다.

그건 급식비 중의 식품비만 그렇거든요!! 일단 4,000원은 무조건 오답입니다!! 


얼마 전 실시한 급식 설문 조사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자주 달라는 의견을 많이 적어왔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1개의 가격이 2,500원선이다.

식품비가 4,000원인데 베라아크를 자주 줄 수가 있겠니...?

그때도 급식비에 관한 퀴즈를 내려고 했었다. 아니 식품비가 얼마인지 퀴즈를 내려했다.

식품비가 이만큼이라서 비싼 아이스키림을 줄 수가 없다는 취지로.


그런데 이번 퀴즈는 의도가 다르다.

식품비가 아닌 운영비 인건비를 포함한 급식비를 맞추는 퀴즈다. 

급식비는 무료가 아니고 부모님이 고생해서 번 돈으로 내 신 세금이며 매우 비싸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급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고와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버리냐고!!



며칠 후 급식비 정답 당첨자를 공지했다.

우리 학교 급식비는 경양식집의 돈가스보다는 비싼 8,000원 이상입니다.

( 학교급식이 식당 돈가스보다 훨~씬 잘 나오잖아요. )


아이들 대부분이 정답을 8,000원 이상으로 적었다.

급식을 위해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의 노고를 합치는 그 값을 따질 수 없어요.

그래서 8,000원 이상 적은 사람은 모두 정답입니다.


4,000원이라 적은 교직원은 우수수 탈락!!



앗? 드디어 당첨자 발표다. 내 이름도 있나? 얏호! 당첨이다!!



18,000원 13,000원 10,000원 11,500원... 정답은 다들 잘 적었는데

이렇게 비싼 밥을 왜 그리 함부로 버리냐고!!!!!!!!



제 생각엔 10,500원 정도일 것 같아요^^.



급식비 퀴즈 정답자는 퇴식구에서 미니 과자 뽑기

즉석 해서 퀴즈는 냈는데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부랴부랴 집 앞 과자 백화점에서 아주 앙증맞게 생긴 것들로 몇 개 구해왔다. 근데 당첨자만큼 개수가 되나?? 겨우 되겠군.


본인의 정답지를 떼어와서 확인 후 뽑기를 한다. 

어찌나 재밌어하는지 뽑기판에 와글바글 모여서 떠나질 않음 ㅎㅎ


고학년들은 쫀듸기를 선호하고 저학년들은 풍선껌이나 과자를 좋아한다.

뽑기 진행을 도와주시는 선생님이 오늘은 영락없는 문방구 사장님이다.



그런데 얘들아 ~ 급식비 맞추기 당첨 & 뽑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게 비싼 급식을 남기는 사람은 돈을 버리는 바보야 바보!!



선생님 왜 우리한테 바보라고 해요?


(급식=돈)을 버리는 사람은 정말로 바보야. 

돈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돈이 가지 않는대. 

나중에 네가 가난해지면 그건 급식을 함부로 버렸기 때문이야.

급식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돈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고 

돈을 밀어내고 가난을 부르는 사람이니 진짜 바보지.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ash2124/222183511651








신났던 뽑기 동영상 (우리 1학년은 전부다 당첨되었어요. 선생님만 빼고...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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