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토양의 합작품 시래기

자랄 때는 토양의 힘을 모으고, 마를 때는 태양의 힘을 빌린다

by 멘탈샘


무를 손질할 때 대부분 잎부터 잘라낸다. 쓸모없는 부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몸통은 냉장고로 가고 잎은 쉽게 밀려난다.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잎을 버리는 쪽이 오히려 아까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잎을 씻고 데쳐 줄에 널어 말렸다. 그렇게 겨울을 준비했다.


시래기는 정성보다 시간이 만든다. 그냥 널어 두면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는다. 사람이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날씨에 맡기고 계절을 통과하게 둘 뿐이다. 급하면 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시래기는 토양과 태양의 에너지가 집합된 음식이다.


무는 자라는 동안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그 과정에서 흙 속의 물과 무기질을 끌어올리고, 그 대부분을 잎으로 보낸다. 그래서 무청은 땅의 정보를 가장 많이 품은 부분이다. 그 잎을 잘라 말리면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난다.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잎에 들어 있던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응축된다. 이때 불이 아니라 햇볕과 바람이 쓰인다. 자연 에너지로 천천히 마르며 잎은 저장 가능한 상태가 된다.


자랄 때는 토양의 힘을 모으고, 마를 때는 태양의 힘을 빌린다.


그 과정이 시래기를 오래가는 음식으로 만든다.



시래기는 귀한 음식이 아니었다. 늘 곁에 있던 쪽이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던 음식이다. 아껴서 먹는다기보다 남겨두고 먹는 음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래기는 맛을 앞세우지 않는다. 향도 세지 않다. 국이든, 무침이든, 볶음이든 항상 뒤에 선다. 하지만 빠지면 밥상이 허전해진다. 존재감은 작고 부재는 크게 남는다.


시래기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 이미 자란 것을 버리지 않을 뿐이다. 더 많이 생산하지 않고 더 적게 버리는 방식으로 식탁을 지탱한다. 추가 가공도 특별한 포장도 필요 없다. 태양과 바람이면 충분하다. 지속가능한 식생활은 새로운 재료를 찾는 일이 아니다. 남은 것을 다시 보는 눈이다. 무가 떠난 자리에서 잎을 버리지 않았던 선택, 그 선택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래기는 토양과 태양이 지나온 시간이 우리 몸에 도착한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몸을 조용히 원래의 속도로 되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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