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인력붕괴 원인은 급식만족도를 강조한 시스템
급식 인력 시스템은 이미 붕괴 단계에 들어섰다. 인력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지만, 급식에 대한 요구와 간섭은 오히려 늘어났다. 사람은 빠져나가고, 업무는 누적되며, 사고 위험은 일상화됐다. 학교 급식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https://blog.naver.com/idea_with_incheon/224117610554
과로한 조리 종사자들은 복잡한 메뉴를 지적한다. 조리를 단순화하고, 반찬 수를 줄이며, 면기 사용도 최소화하자고 말한다. 겉으로 보면 조리실과 충분한 협의 없이 급식을 지시하는 급식담당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급식은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제공돼야 하는 구조다. 메뉴가 과도하게 복잡해지거나 조리실에 인력 공백이 생기면, 그 부담은 가장 먼저 급식담당자에게 쏠린다. 현장을 조율하고, 공백을 메우고, 사고를 막기 위해 급식담당자는 가장 바쁘게 뛰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따라서 급식 인력 붕괴의 책임은
급식 현장에서 일한 사람에게 있지 않다.
급식 인력 붕괴의 책임은 급식을 교육이 아닌 서비스로 규정하고,
급식만족도로 평가하도록 설계한 시스템에 있다.
급식만족도는 듣기 좋은 말이다.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선호를 존중하며, 선택권을 넓힌다는 명분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만족도를 핵심 지표로 삼는 순간 급식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기준은 교육에서 반응으로, 건강한 메뉴에서 인기 메뉴로, 꾸준한 교육에서 즉각적인 호응으로 이동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 만족도를 강조하는 주문은 있었지만, 그에 필요한 인력·시간·권한은 주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장은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메뉴를, 더 빠른 속도로, 더 높은 기대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구조는 이미 과부하 상태였지만 그 위에 “그래도 해내야 한다”는 의무만 덧씌워졌다. 위험을 감지해도 현장의 기준은 존중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만족하면 그 정도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다른 학교는 랍스터가 나오는데 왜 우리 학교는 안 나오냐”는 말은 현장 간 무리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호로 작동했다.
2. 만족도는 급식을 누구나 마음대로 간섭해도 되는 영역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기준은 흐려지고, 전문성은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되었으며, 책임만 현장에 남았다.
결국 무리한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의 책임만 현장에 있던 사람에게 떨어진다. 정책을 설계한 사람은 사라지고, 지표를 만든 사람은 등장하지 않으며, 결정의 결과만 개인의 과실로 처리된다. 이것이 지금 급식 인력 시스템의 실상이다.(만족도보다 더 잔인한 비인간적 비인권적 위생관리 문제는 일단 빼고라도)
급식인력 정원을 늘리고 급여를 인상해도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급식 인력 문제는 개인의 성실함이나 헌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더 버티고, 조금만 더 노력하자”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효력을 잃었다. 문제는 태도가 아니라, 사람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시스템에 있다.
급식은 교육이라 말하면서, 평가는 서비스의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전문가에게는 판단권을 주지 않으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만 현장에 남기는 구조. 이 안에서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이 문제는 인원을 더 채운다고, 급여를 더 지급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간섭과 비교, 끝없는 평가 속에 놓인 노동은 결국 전문성을 잃고, 사람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버티지 못해서가 아니다. 버텨도 존중받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식은 아이들의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키는 서비스가 아니다. 아이들의 몸과 식습관, 그리고 삶의 기준을 형성하는 교육이다. 그 교육에 서비스의 논리를 덧씌우고, 만족도를 최우선 지표로 삼은 결정이 있었다면 그 결정이 만들어낸 급식의 균열 역시 같은 선상에서 책임이 논의돼야 한다.
책임 없는 체계는 사람을 소모시킨다. 그리고 지금 학교 급식실에서는 그 소모를 버티지 못해 떠나는 사람들이 이미 너무 많다. 조리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양사와 영양교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급식 민원과 담당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책임 구조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영양사·영양교사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https://www.f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688
급식 종사자들은 급식을 사랑했다.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에서 일의 의미와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급식 만족도가 성과가 되는 순간, 현장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의 공간으로 변해 갔다. 급식의 역사를 함께 밟아온 한 사람으로서, 급식을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 현실이 너무도 아프다.
“존중이 없는 거, 교육이 없는 거, 저는 그게 급식실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꼭 감사해 할 필요는 없죠. 근데 옛날에는 저희 영양교사들이 오히려 조리실무사님들한테 요리를 배울 정도로 정말 요리 잘하고, 아이들 밥 먹는 게 예뻐서 열심히 만드는 그런 분이 많았어요. 근데 지금은 그런 분들이 점점 다 떠나고, 그냥 아무 보람 없이 돈 벌러 온 대체근로자, 아무 데도 취업할 곳이 없어서 요리를 전혀 모르는데 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 아이들한테도 안 좋은 일이잖아요. 그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학교급식이 옛날에 정말 가난해서 선진국 원조를 받는 데서 시작해서, 지금은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 배우러 올 정도로 발전했거든요. 제발 좀 우리 급식을 존중하고 믿어달라고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서울 A초등학교 영양교사(경력 20년 이상)
1500명 먹이는 학교에 정수기 없는 급식실…그들이 찬물 먹는 방법 기사 일부
https://brunch.co.kr/@dudnwl/377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28.html
"1500명 먹이는 학교에 정수기 없는 급식실... 그들이 찬물 먹는 방법, 기자가 대체근로자로 일해보니....비인간적 비인권적 감시만 강화" 기사 내용 일부 (아래)
“학부모님 2명으로부터 왜 고기 메뉴 추가로 더 안 줬냐고 항의 전화가 왔어요. 저는 그래도 경력이 있으니까 젊은 선생님들처럼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진 않아요. 무조건 죄송하다고 말하는 건 일을 더 키우는 거예요. 우리에겐 규칙이 있어요. 먹고 싶은 반찬만 먹는 건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영양 밸런스를 위해 다른 반찬도 다 먹고 오면 이것도 추가 배식해주겠다’고 아이한테도 알려줬다고 했죠. 좋아하는 것만 편식하고 다른 건 아예 안 먹는 건 학교급식이 아니거든요. 내가 먹고 싶은 반찬만 먹는다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고 학교급식 교육 지도에 맞지 않아요. 그런데 학부모님은 ‘아이고, 죄송해요’라는 답을 원한 거예요. 왜 로봇처럼 말하냐고 트집을 잡기 시작하더라고요. 올해 목동에 ○○중학교 영양교사가 자살한 사건이 터졌을 때, 영양교사들이 집회까진 못하고 우리끼리 추모 식사라도 했어요. 후배들이 죽겠다고 죽겠다고 하더라고요. (영양사와 영양교사 5명이 자살했다고 알려졌는데) 선배로서 해결을 못해주니까 보기 너무 미안하고….” —경력 20년 이상 된 서울 A초등학교 영양교사
“(학부모가 전화로) ‘선생님, 이런 식으로 하면 국민신문고에 신고하겠다’고 화를 내요. 학원 가면 면은 빨리 배고파지는데 왜 면 줬냐고. 흰밥도 같이 제공했다고 했더니 ‘면 주면 누가 밥 먹어요?’ 이렇게 또 화내요. 식재료 반출한 거 아니냐. 돈 어디다 쓰는 거 아니냐. 방사능 불안한데 수산물 왜 썼냐고 교장실 찾아가겠다고 하고. 대량급식은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1500명 입맛이 다 다르니까 저희는 죄인이에요. 급식 만족도 조사 날은 폭언 때문에 펑펑 울어요. ‘머리 좀 쓰면서 일하세요.’ ‘식중독으로 신고하려다 참았다.’ ‘애가 맛없단다.’ 동기들 얘기 들어보면 서울 강남이나 목동 같은 학군지는 더 무서워요. 저는 정신과 다니면서 우울증약 먹고 병가도 냈거든요. 펑펑 울고 나서 갑자기 식단 갈아엎으면 (인력 규모, 식자재 수급, 장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식단으로 바뀌는 거라) 결국 조리사님들을 힘들게 하는 거예요. 죄인이 되면 ‘조리원님 이렇게 좀더 신경 써주세요’ 잔소리하게 되고.” —경력 10년인 서울 과밀 초등학교 영양교사
“교과교사들한테도 점수 잘 받아야 해요. 음료수도 만들고 구절판도 가지런히 해줘야 해. 카프레세 샐러드도 토마토랑 치즈랑 썰고 다 이쁘게 묶어서. 골뱅이무침에 훈제오리에 묵은지볶음에. 양배추쌈도 이쁘게 두 장씩 손으로 마는 거예요. 예전보다 반찬 가짓수가 엄청나요. 손으로 만들어서 하는 거라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침에 꼬부라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다들 그만둬요. 신입은 다들 그만둬. 못 참아. 이런 상황인데도 학부모들이 전화를 막 해요. 이렇게 맛있는 거를 애들이 더 달라 하면 안 줬다고. 근데 양이 한계가 있잖아요. 요즘은 아빠들도 전화해요. 우리 자식 왜 안 주냐. 못 먹었다는 거죠.” —근골격계 질환으로 퇴직한 서울 조리실무사
학부모가 학교급식실에 민원을 넣는 방법은 쉽다. 학교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급식실 내선번호를 알려준다. 민원전화 때문에 내선번호를 없앤 학교라 해도, 행정실에 연결해달라고 하면 곧바로 알려준다. 지역 커뮤니티나 ‘맘카페’에서는 어렵지 않게 교육청 급식담당자 연락처에 더해 민원 넣는 방법, 학교급식에 대한 여론 조성 글을 찾아볼 수 있다. 학교 누리집에 들어가보면 급식 게시판을 통해 매일 식단을 사진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학교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양교사는 “일부 특목고의 경우 이미 10년 전부터 학부모들이 지속적으로 돌아가면서 급식 현장을 점검하기도 하고 급식 관련 회의에서 이 식단은 빼고 이 식단은 넣으라는 식으로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교급식실에 대한 교육청 위생점검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비인권적이에요. 코로나19 전엔 1년에 두 번, 이후엔 1년에 한 번(나머지 한 번은 자체점검) 불시 점검을 하는데, 언제 나올지 몰라서 항상 긴장해야 해요. 갑자기 학부모를 대동해 오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감시체계를 강화한다고 심지어 다른 학교 학부모들을 데려와요. 작년에 우리 학교 조리실무사 2명이 갑자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통보했어요. 생전 처음 본 대체근로자 2명이 왔는데, 딱 들이닥치면 호떡집 불도 그런 난리가 아니에요. 진짜 지진 난 거 같아요. 현장에서 위생복 챙겨주고, 식판·칼·도마 미생물 검사 검체물 챙겨주고. 숫자로 학교를 점수화해요. 고무장갑을 누가 잘못 꼈으면 사실 폐기하고 새로 끼면 돼요. 근데 10명 중에 대체근로 1명이 그런 실수를 하면 점수를 까고 ‘문제 급식실’이 돼버리는 거예요.” —서울 A초등학교 영양교사(경력 20년 이상)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26.html
“저도 급식실 7년 일하고 온몸이 망가졌다”거나 “일주일 만에 손은 보라색 되고 몸은 다 망가졌다”(kook****)는 고백, “제 평생 그 어떤 일보다 힘들고 처절한 노동의 현장이었다”(gasi****)는 회고가 나왔다. 그러다 스크롤을 오랫동안 멈추게 하는 문장과 마주하고 마음이 무겁게 짓눌렸다. “현 종사자로서, 곧 떠납니다. 보람도 없고, 노력에 비해 보상도 없는 일. 최저임금이지만 용기 내 시작했던 일인데 노동 강도보다 제 자신이 잔반이 되는 기분이 드는 일입니다.”(romj****)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8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