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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일기 Jun 08. 2024

영국 내 인종차별 심할까

니하오 소리는 들어봤죠

영국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다지 '신사적'이지 않았다.

오래 전 우연히 영국사람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내가 미국인으로 잘못 기억했더니

"그럼 넌 중국인이야?"라며 굉장히 비아냥거렸기 때문이다.

실수라며 진심으로 사과까지 했건만 곧바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대꾸한 것이 꽤 임팩트있게 기억에 남았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비행기 안은 한국인으로 가득해서 외국에 간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그야말로 '멜팅팟'의 현장에 있음을 실감했다. 

수화물을 찾는 곳으로 나가자 나랑 같이 온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한명 코빼기 보이지 않았다. 백인이 많은 것도 아니였다. 정말 전세계에서 온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특히 흑인, 인도계가 다수를 차지했다. 아무래도 유럽내 노선보다는 다른 대륙에서 오는 비행편이 많은 게 이유인 듯 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외국인의 비율이 3% 가량. 반면 영국, 특히 런던은 외려 영국인 만나기가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이민자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간다. 

그 동안 내가 살던 세계는 당연히 한국 사람이 다수이고 한국인이 주류였는데, 그래서 그것을 인식할 필요조차 없었는데, 여기서 나는 과연 소수 중의 소수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올 줄 모르는 나의 수화물 짐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백인 할아버지가 가이드라인을 넘기고 서 있는 나를 보고는 좀 나오라며 인상을 팍 쓰며 손짓했다. 나는 무서웠다. 여기선 어떤 사회적 룰이 작용하는지 몰랐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똑같이 나처럼 라인을 넘기고 있는 다른 백인 할아버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나를 외국인이라 무시하는걸까 싶어 기분이 나빴다. 이것이 인종차별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회의 소수가 되면 작은 차별도 크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리고선 곧바로 또 한번 영국에 실망하게 된 해프닝.

힘겹게 기숙사에 도착한 나는 제발 좀 씻고 싶었지만 드라이기를 살 수 있는데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좀 빌렸으면 했지만 어째 사람보다 돌아다니는 새가 더 많은 주말 오전이였다. 그 때 내 레이더망에 기숙사 앞 흡연존에서 담배를 피우는 소녀가 걸려들었다.

영국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왜 있잖은가 그 스킨스에 나올 거 같은..)을 한 그녀에게 접근했다.

“미안한데 너 여기 학생이야?”

“그런데?”

“응 나도 바로 여기 사는 학생인데 내가 인제 와서 그러는데 혹시 드라이기 좀 빌릴 수 있을까?”

“아.. 근데 내가 담배를 좀 마저 피워도 될까?”

“응! 내가 너 다 핀 것 같으면 다시 밖으로 나올게!”

이어지는 눈치 싸움.

그렇게 요리를 하며 창 밖을 보는데..

없다.

그녀가 사라졌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

이 외에 우리 동네 불량아 무리가 나에게 칭챙총이라고 한 것, 아일랜드에서 니하오 소리를 딱 한번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이를 제외하면 난 솔직히 인종차별이랄 것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아무래도 환경이 다국적 사람들이 지내는 어학원이라는 것, 또 내가 진정한 영국 사회에 섞여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진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꼭 니하오, 칭챙총 소릴 들어야 인종차별을 당한 것은 아니다. 외국인, '유색' 인종이라서 불편감을 느꼈다면 모두 차별의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건 있다. 아무래도 가까운 인종끼리 어울려 지내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건데 한국에서는 한국이랑 천지차이인 일본이지만 시크하고 자유분방한 유럽 애들 틈바구니에 끼면 일본 친구들에게 그렇게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마찬가지의 이유로 유럽애들도 그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인종차별이라기보단 나와 너무 다름에서 오는 괴리랄까.

그런데 또 막상 이 유럽 친구들이 영국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때면 묘한 무시랄까 기분 나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어린 게 문제일수도!


사실 내가 겪은 영국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스했다. 솔직히 신사의 나라 따위의 말, 믿지 않았는데 길을 가다 뭔가 물어보거나 하면 백이면 백 친절하게 답변해주고 짐을 들어준다든지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도와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또한 외국인이 흔하진 않은 작은 동네에서 살았음에도 나는 단 한번 이방인을 신기하게 쳐다본다는 등의 느낌을 받은 적도 없고 위협을 느낀 적은 더더욱 없다. 차라리 내가 외국인인걸 좀 감안해줬음 하는데 말을 여전히 너무 빨리 해서 알아먹기 힘들었다는 거..

한번은 길거리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무뚝뚝한 얼굴에 처음엔 지레 겁먹었지만 막상 말을 거니 성심성의껏 답변해줘 영국이 더 좋아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나 노인 분들이 참 인자하고 따듯했던 기억이 있다. 좁은 길을 지나갈 때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지나가라고 기다려준다거나 나이 어린 학생들도 문 잡아주는 매너를 보일 때면 오 여기가 과연 영국이구나 싶긴 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나의 경험에 국한되는 것이고 자신의 발음을 놀리듯이 따라하는 직원을 만났다거나 동양인 여자라고 만만하게 대하는 남자들에게 질려버렸다는 등 지인의 얘기를 들으면 같은 영국 내에서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개개인마다 차별에 대한 민감도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을 두고 느끼는 바도 다른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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