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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일기 Jun 24. 2024

영국 날씨 이야기

날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영국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가 구린 날씨와, 맛없는 음식 아니겠는가!

나는 영국에서 3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있었으므로 사계절은 다 보냈는데 일단 영국 날씨가 구린 건 확실하다.


비행기를 타고 유럽을 가로질러 영국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하늘 아래 풍경은 그야말로 끝없이 이어진 들판과 설산이었다.

그러다 구름 속으로 비행기가 잠겼고 곧 이어 나타난 영국은..

잿빛이었다..ㅎ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날씨가 흐렸다.

햇빛을 못 보고 자란건지 창백하리만치 하얀 남학생들이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축구장에 바글바글 한 걸 봤을 때, 난 진정 영국임을 실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게 갰다.

그리고 다시 잿빛으로..


3월 초 영국 날씨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 장갑과 털모자를 쓴 사람들도 꽤 있었다.

물론 어른들이 주로 그렇고 혈기왕성한 청년들은 후디 하나로도 잘만 다닌다.

허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어학원에서 최고령자, 고로 무조건 롱패딩이다.

4월까지 롱패딩은 내 교복이었다.

영국은 수선화가 피면 봄이 왔다는 신호라던데 수선화는 여기저기 만개했지만 날씨는 도저히 봄 같지가 않더라.

3월 말 요크 성벽을 따라 핀 수선화

다행히 생각보다 기숙사 방이 아늑해서 좋았다.

라디에이터가 유일한 난방장치인데 나름 제 역할을 하는지 전기장판 없이도 잘 잘 수 있었다.(단 이불은 두꺼워야 함) 

그런데 이 라디에이터라는게 빨래를 잠시만 걸어놔도 바짝 마르게 하는거라 대단히 건조할 수 있으므로 가습기를 꼭 사용하시라 당부하고 싶다.


4월까지도 꽤 춥던 날씨가 5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굉장히 따뜻해졌다.

영국의 여름은 가히 천국이라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여름과는 시기가 좀 다른데 예를 들어 한국 같았으면 가장 더울 8월 중순에 경량패딩을 입곤 했다.

내 기억으로 가장 더웠던 때는 6월 중순이였다.

6,7월이 정말 여름 같았고 8월보다도 오히려 9월에 이상기후 때문인지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날이 많았다.)


아무리 덥다 해도 습하지 않으니 그닥 불쾌하진 않았으며 해는 9시가 다 되어야 지니 3시면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가을겨울이랑 비교했을 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기숙사엔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었지만 더워서 못 자거나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학원에도 에어컨이 없어 잠시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로 이동해서 수업을 들었지만 사실 에어컨을 틀 정도로 더운 날은 내 기준 길어야 2주에 불과하다.

이 때는 축제의 계절이기도 해서 게이프라이드를 비롯한 축제가 런던은 물론 영국 곳곳에서 열리니 분위기도 정말 활기차진다.


모기도 없다.

있긴 하나 별로 없고 신기하게도 모기가 손으로 잡힐 정도로 굉장히 나약(?)하다.

그러고보니 매미 소리도 들은 적이 없으니 없으니 유럽에는 서식하지 않는걸까?


영국의 날씨를 묘사할 때 흐린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나 나는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럽다'고 더 자주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하루에도 정말 다양한 날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가득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지기도 했고 그러다가 또 갑자기 비가 내리던 그런 날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나는 일기예보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됐다.

그리고 모자는 필수다. 겉옷도.

모자 달린 방수 재질의 레인코트가 영국에서 유독 왜 그렇게 많이 보이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사실 좋은 점도 있었다.

놀러 가는 날, 비 내리는 하늘을 보며

'에잇, 오늘 공 쳤네.'

할 것이 아니라 이러다가도 금새 맑아질거란 희망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내가 나가면 날씨가 좋아질거란 대책없는 낙관주의가 생겼달까?

물론 그 반대 경우도 많고..

대충 이렇다고 보면 된다

기온도 마찬가지다.

좀 전까지만 해도 꽁꽁 무장하고 있던 사람들이 해가 나면 어디서 다들 나왔는지 시원하게 벗어 재끼고는 공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러니 안에 나시 입고 패딩 입는 젊은이들 역시 여기선 더 이상 신개념 패션이 아니다.


비는 자주 내리지만 우산을 쓰기엔 정말 애매하다.

일단 내리다 안 내리다를 계속 반복하는데다가 몸이 젖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가장 흔한 경우는 미스트 뿌리듯 조금씩 비가 흩뿌리는 모습이다.

그러니 우산보다도 모자 있는 겉옷이 참 유용하다. 

바람도 참 많이 분다.

한번은 영국인 교직원과 함께 야외에서 음식을 옮기는데 비는 내리지 뚜껑은 날라가고 난리가 나자 

"The weatehr is horrible."

라고 하는데 아무리 영국인이래도 그런 날씨가 익숙해지진 않나보다?

요약: 생각보다 덜 덥고 덜 춥지만 계절 상관없이 언제 비바람이 불어 오들오들 떨지 모르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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