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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일기 Jul 09. 2024

어학원에 대하여1

어학연수를 간다면 어떤 어학원을 갈지는 매우 중요한 결정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어딜 갈지 고민이 되었으나 양보할 수 없는 몇가지 기준을 두고 알아보면 생각보다 선택지는 꽤 좁다.

대학 부설인지, 부담스럽지 않은 학비, 기숙사 유무, 날씨나 인프라 등 이것저것 고려해서 몇 군데 간추린 어학원 리스트가 있었고 마침 얘기하던 유학원이 그 중에 하나를 추천하자 나는 '여기다' 싶었다.    

그리하여 이 곳이 나의 영어 실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에는 크게 중점을 두지 못했지만 수업 퀄리티 등 전반적인 후기도 나쁘진 않았으니(나쁜 후기도 더러 보였다..) 이 보다 더 나을 곳은 없어 보였다.


웃기지만 어학원에 도착하는 그 날까지도 나는 이 어학원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하기야 어학원과 커뮤니케이션은 유학원에서 다 알아서 하지, 동네 이름은 생전 처음 듣는 곳인데다 대학이 있다기엔 정말 작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리뷰도 날짜를 보아하니 업데이트가 한참 늦어졌고 대학에 대한 정보도 그닥 건질 없는 홈페이지가 전부였다. 아니 여기 진짜 대학 맞아요..?


일단 그 곳은 우리가 흔히 아는 대학인 유니(university)가 아닌 컬리지(collge)였다. 컬리지라고 해서 대학이 아닌 아니지만 곳은 주로 에이레벨(a-level)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영국에서는 만 16살 전후로 GCSE라는 중등교육과정을 마치면 에이레벨 혹은 비테크(btec)를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약 2년간 에이레벨을 마치면 그간의 성적을 토대로 유니에 가게 된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내가 가는 학교는 대학에 비하면 규모도 훨씬 작고 학생들도 미성년자가 대다수이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및 반배정을 위한 인터뷰를 했고 모두 어학원의 부원장이 진행하였다. 매우 포쉬한 액센트를 지닌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엔 크게 어려움이 없었고 귀담아 들어주는 그의 태도에 나도 자신있게 이것저것 말했더니 그는 내가 단연 b2 반에 배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더하여 영국까지 오게 된 경위를 묻자 대충 휴직을 했다는 걸 설명하자 그는 친히 'a sabbatical year'라는 단어를 알려주어 1년 내내 유용하게 써먹었다. 


어학원에 일본인 학생의 비율이 높다더니 과연 듣던대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학생 전원이 일본인이였다. 대학에서 단체로 온 모양이었다. 한국인 같아 보이는 친구도 더러 있어 유심히 살펴보면 이 친구들은 높은 확률로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본인이였다. 그러나 막상 배정된 반에는 일본인 학생이 그닥 많지 않았고 유럽인이 대다수였는데 나는 이들의 난생 처음 듣는 억양(덕분에 유럽 국가별 영어 발음을 어느 정도 구별하게 됨..)+자기네 식으로 발음(예를 들면 프랑스는 h가 묵음이라 발음하지 않는다)으로 속사포처럼 뱉으면 듣는 나는 어질어질했다. 그래도 또 신기한 건 선생님은 잘 듣는다는 것이였는데 만약 수업 중 유럽 학생과 선생님이 대화를 하면 나는 선생님의 리액션에서 그 아이가 대체 뭘 말한 건지 대충 눈치를 채야 했다.. 애석하게도 학생 커뮤니케이션이 수업의 거의 8할을 차지했으니 나는 외려 일본인 친구를 선호했다. 

사실 영어도 영어지만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컸다. 국가는 다르고 쓰는 말은 다를지라도 그들은 비슷한 생김새와 문화를 공유하는 '유러피안'으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었고 대학생은 커녕 아직 미성년자인 애들이 대다수였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보다 겨우 몇 살 위인 애들이 싸가지 없게 구는 걸 보는 심정이란..

물론 이는 모두 대략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당연하게도 영어로 소통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어려도 예의 바른 유럽 친구도 많았으며 중년의 나이에 오신 분들도 더러 보였다.


수업의 질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레벨에 비례한다. 어학원에서도 수업 퀄리티가 좋기로 소문난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 반은 주로 상급반을 가르쳤다. 그러다 부활절 휴가를 맞아 잠시 합반을 하면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은 별로로 느껴질 만큼 정말 고품격 수업이었다. 

일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게 수업 플랜이 촘촘히 짜져 있었으며 활동은 대부분 재밌는 동시에 유의미했다. 더 대단한 건 학생들이 활동을 하는 와중에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피드백하고 라포를 형성한다는 점! 같은 교사로서도 배울 점이 너무 많아 보였다. 

특히나 같이 원서를 읽는 수업을 좋아했는데 발문 선정은 또 어찌나 탁월하던지 선생님이 책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저마다의 의견이 오가며 재밌는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보통 다른 선생님들은 대부분 챕터별로 주제가 다른 교과서를 가지고 그냥 진도를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가끔 알려주는 요런 깨알같은 영국 상식은 덤

그러나 솔직히 수업 자체가 영어 실력에 크게 관여하냐면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수업을 받았다 한들 배운 표현을 내 입에 붙게끔 말하고 또 말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처음에 나쁘지 않은 수준의 반을 들어가 기뻤지만 나는 11개월이 넘도록 그 반에 머무르며 영어 실력이 정체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누굴 탓하겠는가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을.

그러나 다시 돌아가도 나는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누리고 경험하는 쪽을 선택할거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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