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메이트와 반분위기
어학원에서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은 수업 분위기였다.
첫 배정된 반은 몇몇 일본 친구를 제외하면 거의 유럽 애들이였다. 대부분 이미 오래 지내서 떠날 일만 남은 친구들이라 열정도 의지도 딱히 보이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어학원이다보니 나에게까지도 그 영향이 끼쳤다. 게다가 이탈리아 틴에이저들이 어찌나 시끄럽던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오전 수업은 두 타임으로 나뉘어 중간에 선생님이 한번 바뀌는데 선생님에 따라 클래스 분위기가 확확 바뀌기도 했다. 보통 학구적인 분위기면 애들은 지루해서 죽을라 했고 프리한 분위기는 수업이 산으로 가기 일쑤였다. 그 점에서 나는 교사로서 스스로 내 모습이 많이 돌아봐지고 또 같은 교사로서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또 찬양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어디서든 교사의 삶이 과연 녹록친 않구나 싶었다. 영국인들 일 열심히 하던데요!
유럽 애들은 짧게 머물고 가기도 하고 이스터, 여름방학 등 휴가철에 따라 학생 구성원은 물론 선생님까지도 물갈이(?) 되는 경우가 꽤 자주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본인 하기에 나름이라지만 나는 주변환경에 영향을 꽤 받는 타입이라 그때마다 만족도가 많이 달랐다.
17살 한 독일 친구는 여름방학 시즌인 서머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독일인이 주류 중의 주류였는데 이제 그 친구는 반의 유일한 독일인이였다. 그 덕인지 우리도 꽤 친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어학원에 만족하냐고 물어보니 어학원 자체는 추천하지만 시기 선택은 다소 미스였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독일인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좀 외롭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서머스쿨 때가 친구들도 괜찮고 수업 분위기가 흡족스러워 종강하는 날에는 서로 준비한 음식도 나눠 먹으며 아주 훈훈하게 마무리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방학은 크게 이스터홀리데이, 서머홀리데이, 크리스마스가 있는데 나는 이스터는 제외하고 6주 가량을 쉬었다.
친구 사귀는 것은 과연 쉽지 않았다.
나는 친해질 사람이라면 친해지기 마련이라는 주의라 엄청난 노력을 하진 않아서 몇몇 클래스 메이트를 제외하면 딱 정말 수업만 같이 드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이 외에 어학원에서 주최하는 소셜프로그램이 있어 같이 스포츠를 한다거나 베이킹을 하기도 하고 또는 주말여행도 간다. 이를 통해 재밌는 추억도 꽤 쌓았지만 보통은 원래 친한 친구랑 가서 그냥 즐기다 오지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경우는 드물었다ㅜ
그보단 반의 연령대가 거의 항상 어렸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부터 삶의 스토리를 듣고 싶었던 나로서는 그 점이 많이 아쉬웠다. 그런 와중에 사비나라는 스위스의 한 중년여성이 반에 새로 들어왔다. 젊었을 때 1년간 영국에 산 적이 있어서인지 약간 영국식 엑센트가 묻어나오고 다른 유럽 친구들보다도 말을 알아듣기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항상 온화하며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녀와 파트너 활동을 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아이는 없고 남편과 손수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는 그녀는 곧 남편이 자신을 보러 영국에 온다고 했다.
"원래 비행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 한번을 안 탔는데 여길 온다니 나를 정말 사랑하나봐."
농담처럼 말하며 웃는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한번은 그녀가 어학연수를 오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원래 전에 하던 사업이 있는데 애정은 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접고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단다. 그걸 얘기하며 문득 감정이 북받쳐 우는데 그 마음이 이해되는 한편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또 그것을 남편이 지지해주는 것이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졸업하여 학원을 떠난 그녀가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을 시내에서 마주쳤다. 잠시 얘기 나누며 내가 비행공포증도 무릅쓰고 온 것이냐 묻자 비밀을 들켰다며 농담을 했다. 그리고 후에 그녀가 정말 아름답다며 추천해준 스위스의 베른을 나는 정말 만족스럽게 여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