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일 안 해서 좋았어요
베스트 4
1. 공기
미세먼지로 언제부턴가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려워진 슬픈 한국의 현실.
영국도 런던 같은 대도시나 공업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곳은 정말 정말 공기가 깨끗한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기숙사 앞으로 잔디밭이 있어서 그랬을까?
등교하러 나서는 길에 문을 딱 열면 폐까지 상쾌한 그 기분..
문득 아무렇지 않게 매일매일 이 맑은 공기를 누리는 이곳 사람들에게 질투가 났다
(너희도 감사하니..?)
공기가 좋은 곳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흐린 날만 아니라면 밤에 별이 정말 정말 많이 보였으니까.
작은 도시라 해도 런던과 그리 멀지도 않은데 한국의 시골보다도 많이 보이다니 놀라웠다.
2. 날씨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영국의 날씨가 맘에 들었다.
물론 변덕스럽고 비바람도 무지 많이 불며 겨울에는 3시에 해가 지는 것이 나도 좋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귀국한 날 영국과는 차원이 다른 살을 에는 추위에 문득 얼마나 한국이 극한의 날씨를 가졌는가 깨달았다.
그리고 그리운 여름.
올해 영국은 비도 많이 오고 여름 날씨가 참 별로였다고는 하지만 미친듯한 폭우와 유례없는 더위를 나며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3. 공원
영국 하면 가장 유명한 공원은 단연 런던의 하이드파크인데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딱히 특별할 게 없는 게 런던에서 공원은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
하이드파크를 걷다 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공원에 와 있다.
그만큼 영국은 정말로 공원을 사랑한다!
꼭 공원이 아니더라도 뜬금없이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영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광경이다.
이 덕에 굳이 찻길로 가지 않고 공원을 가로지르면 돼서 참 보행자 친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거리미관
이 또한 사는 동네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내가 지내던 곳은 거리의 집들이 너무 예뻐서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워스트 4
1. 인터넷
인터넷이 정말 잘 안 터진다.
지하철에서는 아예 안 터진다.
그래서 여행하며 길이나 정보를 찾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그리고 그래선지 모르겠는데 핸드폰 대신 책을 보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내 생각에 영국인들은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원래대로 보존할래, 신식으로 바꿀래 물으면 전자를 택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 같다.
한국은 그 반대고 말이다.
한 번은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길이였는데 가로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불편했지만 가로등이 여기저기 켜져 있다면 그 운치 있던 분위기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전엔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리의 편안함을 위해 분명 희생되는 어떤 것이 있을 거고 그래서 무작정 바꾸기보단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2. 석회수
예전에 유럽여행하며 호스텔을 다니면 식기류가 더러워서 사용하기 께름칙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연유를 몰랐는데 바로 석회수 자국이 남는 거였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지만 간이정수기인 브리타가 필수템이고 물 맛도 안 좋기 때문에 차를 끓여 마셔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체감하지 못했지만 머릿결과 피부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고 한다.
단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져서 라임스케일 리무버라는 용액을 따로 사다가 빡빡 지우는 과정이 힘들었다(그것마저 오래 방치하면 잘 안 지워진다).
영국에 오자마자 석회건염이라는 것이 걸렸다. 골반 근처에 극심한 통증이 있었지만 다행히 얼마 안 있어 사라졌다. 석회수랑 별 관련은 없다고 하다만 신기하게도 다른 한국분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걸린 것이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3. 병원
영국에서 일정 기간 지내려면 상당한 건보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의료비가 전액무료이기 때문이다.
대신 아무 병원이나 갈 것이 아니라 GP라고 하는 우리로 따지면 동네의원에 먼저 가는 게 순서이다.
거기 수순에 따라 더 큰 병원을 가든지 한다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막상 가도 별다른 조치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선지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영국인들은 알아서 약을 찾아 먹든지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또한 장단점이 있는데 약을 남용하지 않아서 좋지만 나는 다래끼로 인해 몇 달간 눈이 퉁퉁 부은 채 지내야 했다.
하지만 100% 예약제라 대기시간이 길지 않았고 의사가 친히 대기실로 나와 환자를 호명하는 것, 진료를 마치면 수납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쿨하게 떠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응급실에 갈 뻔한 경험도 있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응급상황, 이를테면 피를 철철 흘린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몇 시간째 기다리다 결국 취소하기도 했다.
4. 각종 파업
병원, 학교 등에서 파업하는 것은 영국에서 꽤나 잦은 일이다.
무엇보다 철도 민영화 탓인지 기차 파업이 매우 매우 잦다.
뚜벅이 입장에서는 이 기차 파업이 정말 불편한 상황 중 하나였다.
여행 계획이 죄다 틀어질뿐더러 공항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라..
또한 기차 파업까진 아니더라도 딜레이 되고 심하면 캔슬까지 되는데 그 이유는 기계 결함이나 전산상의 오류부터 해서 누군가의 자살시도 등 이유 또한 가지각색이다.
근데 가끔 기차역에 늦게 도착하면 그럴 땐 절대 연착 안되더라;;
영국 내 사는 지역, 그리고 신분이나 머무는 기간에 따라 영국에 대한 인상은 천차만별일거라 생각한다. 나는 런던 지역에 거주한 것도 아니고 기숙사도 제공받았기 때문에 주거환경도 매우 쾌적했고 단기간 머무르는 학생의 입장이라 그 느려 터졌다는 행정도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로 영국은 불편하지만 자연스러운 나라였고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불편한 점들이 상쇄될 정도로 그 영국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도 소박하지만 내게는 더할나위 없이 사치스럽던 그 거리와 자연을 거닐던 순간이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