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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디앨런 Aug 24. 2022

헤어질 결심

이 글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봐야 재미있습니다.


산해경. 헤어질 결심, 그 자체다.

헤어질 결심이 하강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나는 그보다는 사랑 그 자체를 더 크게 느꼈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음에 대한 주제는 많은 영화에서 다루고 있지만..

나는 있잖습니까?

그냥 사랑이라는 주제를 추리라는 아주 얇은 가제수건으로 덮어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근래 본 최고의 로맨스 영화였습니다.


어떻게 써도 이 마음을 담지 못할 것 같아 쓰지 못하다가 잊어버릴듯하여 후딱 남겨라도 봅니다.

그래도 더 깊이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오늘 각본집도 주문했는데..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박해일은 산 같은 사람이고 탕웨이는 바다인 사람으로 영화는 출발한다.

영화 자체는 크게 두 번의 살인사건을 기준으로 1장과 2장으로 나눌 수 있다. 1장에서 서래는 산과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2장은 바다와 같은 사람과 결혼한다.

아시겠지만 그렇다면 탕웨이가 사랑하는 박해일은 그럼 1장의 남편과 같은 포지션으로 가는 건가?

아니다.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

사랑은 산해경과 같다. 비가 온 땅에 아주 얇고 깊은 뿌리가 촘촘히 내리고 그 뒤에 쨍쨍한 해로 굳어진 땅과 같다. 굳어진 다음엔 부서지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얇고 깊은 뿌리가 내리는 것은 무너지고 깨어지는 과정이다. 붕괴다.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다는 노래 가사처럼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때가 많다. 우리 모두가 그렇겠지.

가족과 함께일 때의 나와, 친구와 함께일 때, 일할 때의 나, 그리고 사랑할 때의 나는 모두 다르다.

그 사이에 혼돈을 느껴보았다면 난 이 영화가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모두 나이다.

아주 촘촘하게 뿌리를 내려 두터운 기둥으로 자라난 나이다.


바다와 같던 서래가 산과 같은 해준을 만나, 2장에서는 산과 같은 서래 그리고 바다와 같은 해준이 된 것처럼

산과 같은 남자가 수사할 때면 인공눈물(물)의 도움을 바쁘게 찾고,

본인을 바다라던 여자가 꼿꼿함으로 사람을 홀리고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서래가 바다에 잠겨 흩어진 순간에도 파도의 포말이 되어 해준의 바짓가랑을 적신다.

해변의 부감샷. 서래의 옆모습이 보인다.

씨네 21 박찬욱 감독 인터뷰에서 결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래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길 원했다. 서래가 살았건 죽었건 해준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건 분명하고 시체조차 못 찾은 해준은 서래가 살아있다고 믿고 죽는 날까지 헤매거나 제 발로 나타나길 기다릴 것이다."


비하인드와 짜릿한 연출을 찾고 읽어가는 재미에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이 영화...


그러니까 이런 거다.

원래 빠삐코만 먹는 사람인데,

어느 날 산책하고 나서는 빠삐코랑 탱크보이랑 둘 다 살짝씩 먹고 싶어 진 거지. 어떤 걸 먹을지는 도착해서 고르려고 일단 직진해서 아이스크림 백화점을 향하는 거다.

도착하니까.. 웬걸. 빠삐코밖에 없다.

늘 먹던 거 그리고 오늘도 먹고 싶던 거.. 근데 집으려고 손이 닿는 그 순간까지도 탱크보이가 생각나는 거다.


결국 아이스크림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어딜가냐?

다음 편의점. 그러나 얄궂기도 하지.

통계상 빠삐코가 요즘 잘 나가는 건지 탱크보이가 잘 팔려서 없는 건지, 근처 편의점 네 군데를 다 돌아다녀도

빠삐코만 있는 거다.

아니? 빠삐코만 있었으면 덜 억울해. 탱크보이 자두맛.. 이런 거는 있는 거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

헤어질 결심의 사랑을 기준으로 시놉시스 써봅시다.



그러면 그냥 편의점 문을 닫고 나와야지 

그리고 제일 없을 것 같아서 가보지도 않았던 동네 구멍가게에 가는 거다

그리고

거기에..








탱크보이가......













끝까지 없는 거지...

결말까지 내주자면, 주인공은 폴라포를 들고 나온다.

빠삐코도 탱크보이도 아닌 폴라포.

아삭아삭 포도 빙과를 베어 무는 소리. 여름밤의 엠비언스.

주인공 뒷모습 멀리서 풀샷.


end.










- 헤어질 결심으로 절여져 자의식 과잉에 도착한 어느 시네마 러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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