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걷는 듯, 결국 나란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우리 동네 산책길을 나서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나처럼 아이를 보내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걷는 아이 엄마, 이미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내 부모님 또래의 아주머니나 아저씨, 추우나 더우나 짧은 러닝 바지에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뛰는 사람들,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출근길을 산책길 삼아 걷는 공기업 직원들도 보인다. 아침 풍경에는 그렇게 여러 삶이 포개져 있다.
여러 산책코스 중에서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면 호수를 둘러싼 주변 산이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다. 호수 한 바퀴는 약 2.5km, 보통 걸음으로 20분에서 25분이면 돌아 나오는 길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은 속도로 걷는 낯익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오늘도 건강하게 나오셨네, 안녕하세요?’라며 조용히 인사를 건네보기도 한다.
그 시간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혼자이거나 친구와 함께일지언정, 장성한 자녀의 손을 잡고 걷는 어르신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멀어지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산책로는 묵묵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 길 위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이들은 노부부다. 젊은 연인들처럼 꼭 붙어 걷는 이는 드물다.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앞서가다 벤치에 앉아 먼 산을 보고, 할머니는 한참 뒤처져 이름 모를 풀꽃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내가 산책을 시작할 때 분명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던 노부부는, 산책로의 끝자락에 위치한 무인카페에 들어설 즈음이면 결국 나란히 카페 안에 앉아 있다. 따로 걷는 듯해도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해 흐르는 발걸음 속에서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 뒷모습을 보며 문득, 먼 훗날 나와 남편의 모습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학창 시절, 개량한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시던 선생님께서 칠판에 큼지막하게 人 자를 그린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이건 사람이 두 명이 서로 기대 서 있는 모양이에요.”
이상하게 그 설명은 오래 남아 있다. 산책로 위의 노부부를 보며 서로 조금 기울어 균형을 맞추는 모양이라는 人(사람 인) 자가 떠올랐다. 혼자 꼿꼿이 서 있는 모양이 아니라, 각자의 보폭으로 걷다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기대 서 있는 두 사람처럼 말이다.
결혼 6년 차에 벌써 이런 생각을 해버린 내가 조금 성급한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보니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늘 같은 역할로 부부가 마주 서 있는 건 아니다. 들여다보면 '부부'라는 이름 뒤에는 여러 이름들이 겹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 앞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되고, 부모님 앞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 된다. 일터에서는 또 다른 직함으로 불리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다 보면 자연스레 '배우자'라는 자리는 가장 뒤로 밀려난다. 아이의 일정을 먼저 생각하고, 양가 부모님의 건강을 먼저 살피고, 가정과 회사가 무리 없이 돌아가도록 각자의 몫을 해낸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바쁜 하루의 끝에 마주 보이는 사람은 결국 '서로'다. 많은 역할이 오가지만, 마지막에 남는 이름은 결국 ‘배우자’인 것이다.
나 역시 남편과 산책을 할 때면 여전히 보폭이 맞지 않아 가끔 투닥거린다. 주변은 잘 둘러보지도 않고 직선으로만 걷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과, 예쁜 것을 발견하면 멈춰 서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산책은 늘 약간의 불협화음을 낸다. 그런데 불협화음도 결국 화음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가끔 박자가 어긋나고 삐걱거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손은 잡고 걷는다. 신혼인가 보다.
“내 손 왜 이렇게 차가워? 남편 손은 따뜻해서 좋네, 천생연분인가? 으하하하.”
나 혼자 매번 신이 나 있다. 내 농담에 남편은 늘 무반응이지만, 그 무심함마저 이제는 조금 익숙하다.
결혼은 한때 나에게 무모한 여행의 시작처럼 느껴졌고, 지금도 가끔 길을 헤맨다. 가이드북도 없이, 제대로 준비물도 챙기지 못한 채 시작한 여행길 같았다.
하지만 혼자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이 긴 길을 함께 걸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문득 고맙다. 남편 때문에 외로움도 느껴보고, 남편 덕분에 고마움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보폭을 오래 기억해 줄 사람 하나가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내 옆에서 서 있어 줄 사람은 나의 영원한 이방인인 ‘남편’이 아닐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조금 기울어 서서 결국 아슬아슬 균형을 맞춰 갈 수 있는 사람말이다.
산책을 하다 눈에 띄는 풍경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수줍게 보낸다.
“오빠랑 같이 오면 좋겠다. 여기 무인카페 커피도 참 맛있어. 다음에 꼭 같이 오자. 오늘 하루도 파이팅.”
어쩌면 산책의 ㅅ은 사람 인(人) 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조금 기울어 기대 서 있는 모양처럼, 그렇게 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