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 불안의 ㅂ이 멈추게한 자리

화장실 수도를 틀어놓고 울던 밤

by 영선코

가장 먼 여행길은 결혼이었다

어쩌면 나는 넓은 세상이 궁금했다기보다, 집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정말 화목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자식으로서 바라본 부모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버티는 시간이 더 길어 보였다. 아니, 서로를 무시한 채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고 해야 맞겠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불우한 가정 환경을 평생 탓하며 술로 버텨내셨고, 그것을 채 보듬지 못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은 책임으로 우리 집을 이끌어갔다. 그런 분위기는 집 안의 긴장을 키웠고, 나는 어릴 때부터 그 불안을 자연스럽게 배우며 자랐다. 가정이란 원래 불안한 곳이라고, 내 무의식 어딘가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크면서부터 ‘독립’이 나를 살릴 거라 믿었다. 원가족에서 멀어져야 비로소 나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서울에서 미국으로, 유럽으로, 중동으로. 낯선 곳이면 어디든 가보고 싶었다.

움직여야만 괜찮아졌던 나의 20대

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너무나 간절했던 탓일까. 나는 늘 움직여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배낭 하나 메고 누볐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고, 두바이 사막으로 날아가 취업을 했던 나의 20대. 사람들은 나를 도전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부지런한 움직임의 밑바닥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깔려 있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서도 아니었고, 더 잘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가만히 멈춰 있으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허전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계속 낯선 풍경과 사람들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오늘 웃으며 만나 오늘 웃으며 헤어지는 짧은 인연들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고, 그렇게 ‘멈춤’에 대한 불안을 망각하곤 했다. 이것은 도피라기 보다 나에 대한 실험에 가까웠다. 세상이 넓은지 알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낯선 땅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내린 선택에 책임을 지며 ‘나’라는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가장 멀고 먼 여행지,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화장실 수도를 틀어놓고 울던 밤

하지만 내가 보고 자란 가정은 단 하나였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결혼 후에도 내가 자랐던 ‘가족’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내가 이룬 가정 안에서도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남편이든, 나든, 아이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말이다.


결혼은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가혹한 수련장이었다. 나는 내가 꽤 유연한 사람인 줄 알았다. 사람들 간의 갈등을 세련되게 중재하며, 다른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혼은 그런 나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결혼은 집안이 아닌 독립된 개인의 만남”이라며 핏대 세워 외치던 나의 당당함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시댁이라는 변수와 육아라는 난제, 남편과의 불협화음 앞에서 길을 잃었다. 정작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관계의 얽힘 앞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작아졌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나 자신이었다. 남들에게는 “그럴 수 있지” 하며 이해하는 척했지만, 왜 남편 앞에서만 ‘공감’과 ‘이해’를 갈구하는지 매일 밤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왜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예민해지지.’

‘내가 잘못 선택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준비도 없이 ‘엄마’라는 이름이 붙었고, 돌도 안 된 아이의 울음을 새벽까지 달래지 못할 때면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내내 나는 아이보다 먼저 무너졌다. 견디지 못해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수도를 틀어놓은 채 아이보다 더 크게 울었던 날이 있었다. 울다 지쳐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던 밤들이 쌓여갔다. 말도, 감정도, 그 어떤 상황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남편과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러다 밤 11시에 집을 뛰쳐나와 걸었다.


그날의 어둠은 사막 같았다. 발밑은 단단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구원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 이상 훌쩍 떠날 수 없는 삶. 외부의 자극으로 나를 덮어둘 수 없는 일상. 그렇게 도망칠 곳이 사라지자, 나는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은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잘못된 건 없었다. 단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랐고, 너와 내가 달랐을 뿐이었다. 나는 다름을 받아들이기보다 설명하고 설득하며 나의 기준에서 바로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유연한 30대 어른이라 자부했지만, 실상은 갈등을 피해 낯선 곳에만 눈을 돌리던 아이에 불과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낯선 도시와 새로운 사람들, 끊임없는 이동으로 나를 단단하게 채워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채움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였고, 누군가의 인정과 공감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했다.

결혼 후에는 그 역할을 남편에게 기대고 있었다.

‘내 마음 좀 알아줘.’

‘나 좀 이해해 줘.’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밑에는 ‘나 지금 괜찮은 사람 맞지?’라고 묻는 ‘불안’이 있었다.

가장 먼 여행길에서 만난 멈춤

결혼은 부모가 보여준 가정과는 다른 결을 만들겠다는 다짐 끝에 선택한, 무모하고도 먼 여행길이었다. 이 여행은 비행기처럼 돌아오는 날짜가 찍힌 왕복권은 없었다. 단순히 낯선 도시로의 이동이 아니었다. 이것은 낯선 사람과, 그리고 가장 낯선 나 자신과 함께 걷는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결혼에 나만 불안을 들고 온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 또한 말하지 않았을 뿐, 자신만의 흔들림을 안고 서 있었을 것이다.

한때 결혼이 나를 가두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결혼은 나를 멈추게 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멈춤을 통과하며, 나는 나를 다시 발견했고 조금 더 깊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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