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말하는 시간이 아니야
네 살배기 아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이는 스스로 어질러 놓은 장난감을 제대로 치우지 않았고, 여러 번 타이르듯 말했지만 도통 듣지를 않았다. 나는 답답함에 못 이겨 아이를 다그쳤다.
"너는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듣니?"
나의 날 선 질문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쳤다.
"그럼 엄마가 말을 안 하면 되지!"
순간,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숨이 턱 막혔다. 아이를 가르치고 남편을 변화시키려 했던 나의 수많은 시도들이 사실은 '말'이라는 도구로 포장된 나의 '욕심'이었음을, 고작 네 살짜리 아이가 단 한 문장으로 발가벗겨 버린 것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왜 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을까 고민하던 시간들이 무색해졌다. 내가 말을 멈추고 한 박자 기다려주면 갈등도 멈출 것이고, 내가 기대를 내려놓으면 실망도 사라질 텐데. 나는 '소통'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쉼 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말'은 오랫동안 생존을 위한 무기였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부터 두바이 생활까지, 낯선 땅에서 동양인 여자로 산다는 건 매 순간 나를 보호하고 설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휴대폰 하나를 개통할 때도 부당한 계약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로 내 권리를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침묵해선 안 됐다.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말해야 했고, 내 입장과 논리를 또박또박 밝혀야만 '투명 인간' 취급을 면할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말(言)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이자 명함이었다.
문제는 그 생존 본능을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으로까지 끌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에서도, 아이와의 문제에서도 나는 습관처럼 '빠른 해결'을 원했다. 불편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이건 아니지, 내 생각은 이래"라며 내 논리를 앞세웠다. 그것이 솔직함이자 효율적인 소통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남편과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과 행동할 여유를 주지 못한 채 나 혼자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이다.
"그럼 엄마가 말을 안 하면 되지!"
아이가 던진 그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말이 가진 무게를 이제 그만 덜어내라는 가르침이었다. 여기는 두바이의 사막도, 낯선 미국의 강의실도 아니라고. 굳이 설명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충분한 엄마이자 아내이니, 제발 그 무거운 ‘소통’이라는 ‘잔소리’를 벗으라는 간절한 신호였다.
가족은 효율을 따지는 프로젝트 팀이 아니라는 걸, 결혼을 하고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늘 빠른 해결을 원했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날카로운 해결책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와 미소였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당장 풀리지 않아도, 그 순간 우리가 어떤 말투로, 어떤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는지가 훨씬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가족은 논리보다 감정이 먼저 작동하는 관계라는 걸, 나는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하지만 머리로 깨달았다고 몸이 바로 따라주는 건 아니었다. '시끄러운 말을 줄여야지' 다짐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내 입은 다시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나의 '말하기 본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꿈틀댔다.
어린이집 하원 길, 나는 아들에게 궁금한 게 너무나 많다. 오늘 간식은 맛있었는지, 누구랑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지, 미술 시간에는 어떤 상상을 펼쳤는지. 질문을 쏟아내는 나를 뒤로하고, 다섯 살 아들은 집에 가서 먹을 초콜릿 과자 생각에 하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직진한다. 그러다 뒤돌아서서 단호하게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엄마, 지금은 말하는 시간이 아니야."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섯 살 입에서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한 대담한 거절이었다. 그 분명한 선언을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우리에겐 각자만의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타이밍과 입을 닫고 싶은 타이밍, 같이 있고 싶은 순간과 오롯이 혼자이고 싶은 순간이 있음을 말이다. 나 혼자일 때는 내 기분대로 조절하면 그만이었던 시계태엽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맞물리며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나 역시 하루의 고단함에 홀로 마무리하고 싶을 때,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피로를 느낀 적이 있다. 결국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상대방에 대한 궁금함을 채우는 것보다, 상대의 '타이밍'을 기다려줄 줄 아는 자세였다.
이제 나는 조급한 말들로 빈틈을 메우는 대신 '여백'이라는 의자를 내어주기로 한다. 취조하듯 묻기보다 그저 가볍게 툭, 한마디 건네며 기다려주는 자세를 연습한다.
"어린이집 잘 다녀왔구나, 우리 장군!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어."
아이의 닫힌 입술이 스스로 열릴 때까지, 남편의 지친 어깨가 스스로 펴질 때까지 그저 그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이 내가 'ㅁ'의 세상에서 배운 가장 깊은 소통의 기술이다.
그날 이후 "지금은 말하는 시간이 아니야"는 우리 집의 유행어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입이 근질거린다. 말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 같고, 지금 설명하지 않으면 영영 오해가 쌓일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은 참고, 두 번은 기다려본다. 아이의 입이 스스로 열릴 때까지, 남편의 마음이 먼저 풀릴 때까지.
여전히 서툴지만, 나는 요즘 말하기보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정말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침묵도 하나의 대화 방식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배우는 내가 조금은 우습고, 또 조금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