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이 이토록 철학적인 음식이었던가
전 세계를 비행하며 수많은 입맛을 경험했지만, 요리에도 저마다의 전용 레시피가 있다는 사실은 결혼 후 시댁의 식탁 앞에서야 비로소 배웠다.
나의 미각은 오랫동안 친정엄마가 설계한 ‘미니멀리즘’에 길들여져 있었다. 엄마의 음식은 필요한 재료만 딱 들어가 뒷맛이 개운한 것이 특징이다. 그녀의 미역국 레시피는 정갈한 교과서 같았다. 질 좋은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 소고기만 넣고 맑게 끓여낸 국물. 그 안에는 어떠한 불순물도, 과한 욕심도 없었다. 딱 필요한 만큼의 간, 딱 필요한 만큼의 재료. 나의 엄마가 주는 사랑은 언제나 그랬다. 자식의 삶에 너무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 애쓰는, 뒷맛이 개운하고 깔끔한 응원. 나는 그것이 미역국의 ‘유일한 정석’이라 믿으며 30년을 살았다.
반면, 결혼 후 마주한 시어머니의 음식은 ‘맥시멀리즘’의 정점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나는 임신 3개월 차에 남편의 첫 생일을 맞이했다. 결혼 후 맞이하는 남편의 첫 생일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요리를 못 할까 걱정스러우셨는지 곰탕 냄비만 한 큰 솥에 미역국을 끓여 오셨다. 냄비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내 눈과 코를 의심했다. 낯선 나라의 생소한 음식 앞에서도 나는 늘 여유로운 여행자였지만 시어머니의 미역국은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외국 음식보다 멀고 낯설었다.
뽀얀 국물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알갱이들이 가득했다.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아 맑게 우려내는 친정의 방식과 달리, 시어머니는 멸치와 다시마를 너무나 진하게 우린 육수를 베이스로 삼으셨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홍합과 소고기까지 듬뿍 넣은 미역국이었다. 멸치, 다시마, 소고기와 홍합까지.. 육지와 바다를 넘나드는 맛의 향연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좋은 것은 다 넣었다. 이게 몸에 좋다더라.
이것도 넣어야 맛이 깊지.”
웃으시는 그녀의 레시피에는 ‘중단’ 버튼이 없었다.
한 번은 초복에 시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전복을 넣은 귀한 삼계탕이 식탁에 오르자, 어머니는 "아차차, 내가 깜빡할 뻔했네!" 하시며 부엌에서 삶은 문어를 통째로 들고 나오셨다. 그러고는 삼계탕 위에 문어를 툭 던져 넣으셨다. 그 신박한 조리법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란!
"좋은 건 무조건 다 주고 싶다"는 그녀의 사랑 방식은 정해진 레시피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곤 한다. 처음엔 그 낯선 조합이 당혹스러웠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시어머니가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가장 뜨겁고도 묵직한 응원법이었다.
신혼부부들이 의외로 '김치' 때문에 많이 싸운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누구네 김치는 젓갈이 너무 많다느니, 우리 집은 이렇게 안 먹는다느니 하는 실랑이들 말이다. 나 역시 시어머니의 신박한 레시피를 마주하며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음식인 김치나 미역국조차 집안마다, 사람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마음마다 수만 가지의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지금도 시어머니의 요리는 나에게 여전히 과하다. 여전히 그 진하고 복잡한 맛에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식탁에 마주 앉을 때마다 여전히 생소한 조합에 아직도 속으로 멈칫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시댁에서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이상하게 허기가 진다. 분명 배가 부르다 싶을 때까지 먹었는데도 집에 오는 차 안에서는 남편에게 "나 왜 배고프지?"라고 묻게 되는 것이다. 낯선 사랑을 소화시키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그 국물이 단순한 미역국이 아니라, 혹시 모자랄까 봐 한 번 더 얹은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 입맛과는 다르지만, 어머님의 시간과 사랑을 품고 있는 맛이라는 것을 결혼으로 여행 온 지 6년 만에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내 입맛과는 전혀 다른 결의 사랑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