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으로 연고를 옮긴 이방인들을 위해
"아이고, 남편 하나 믿고 이 먼 곳까지 오셨네?"
진주에 정착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겉으로 새댁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살짝 비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저 믿고 왔는데요?‘
나는 제주도라는 섬이 답답해 서울로 도망치듯 상경했던 국문과 대학생이었고, "국문과가 무슨 미국 교환학생이냐"는 주위의 비웃음에도 "한국말을 잘해야 영어도 잘하는 법"이라며 뻔뻔하게 짐을 쌌던 유학생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홀로 스페인과 포루투칼의 낯선 골목을 누비던 한 달, 500년전 바다를 건넜던 컬럼버스의 영혼이 잠시 내게 머물다 간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거침없고 두려울게 없었다. "사막에 내놔도 잘 살 것 같다"는 말은 마치 나를 두고 만든 말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사막으로 떠났고,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4년간 하늘을 누비던 승무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빌런이 나타나 너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짜릿한 만남을 만들어줄까’ 기대하곤 했던, 기어이 재미를 찾아내고야 마는 오만한 생존주의자. 그것이 나였다.
그런 내가 팬데믹의 장벽을 뚫고 한 남자를 만나, 경남 진주라는 낯선 땅에 착륙했다. 전 세계 수많은 도시를 가봤지만, 내게 진주는 그 어느 곳보다 다이나믹한 세계였다.
가장 먼저 마주한 장벽은 ‘언어’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행선지를 묻는 할머니에게 "앞에 써 있는 거 안 보입니꺼!"라고 쏘아붙이는 광경은, 무례함을 넘어선 신선한 충격이었다. '와, 이 사람들 텐션 보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빠르게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교 계약직 교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루는 아침에 출근해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께 "선생님, 모닝커피 한 잔 준비해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대다 대다. 그래 한 잔 묵읍시다 선생님."
순간 나는 멍해졌다. '됐다'는 거절의 의미인 줄 알았는데 한 잔 먹자고? 이게 말로만 듣던 경상도식 밀당인가? 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알고 보니 이곳에서 '대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힘들다(Tired)'는 뜻이었다. 피곤하니까 커피 수혈이 필요하다는 뜻을 나는 거절로 오해한 것이다.
구글 번역기도 울고 갈 이 낯선 방언처럼, 나의 결혼 생활도 해석 불가한 영역으로 진입하는 듯했다.
낮에는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매주 목요일 밤과 주말에는 시부모님의 권유에 못 이겨 천주교 교리를 배우러 다녔다. 당시 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아이 때문에 몸 상태가 점점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불러오는 배는 수시로 뭉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결혼식만 성당에서 하면 됐지, 굳이 이 몸을 이끌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나와는 가치관도 맞지 않는 교리를 몇 시간씩 듣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억지로 끌려다니며 속으로 삭히던 시간들. 하지만 세례식을 일주일 앞두고 만난 '대모'님은 내게 잊지 못할 가르침을 주셨다.
"우리 안의 '나쁜 에고(Ego)'에 속지 마세요. 나쁜 에고는 항상 우리 귀에 대고 '고통받는 것이 네 숙명이야, 넌 지금 힘들어야 해'라고 속삭입니다.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그 목소리에 지지 말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기도하세요."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내 상황을 정확히 꿰뚫는 말이었다. 연고도 없는 낯선 땅 진주, 친구도 가족도 없이 뚝 떨어진 고립된 생활, 설상가상으로 터진 코로나 팬데믹까지.
나는 무의식중에 '이 상황은 지금 외롭고 힘들어야 하는 상황이야'라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나쁜 에고'가 틈만 나면 나의 긍정적이고 호기심 많던 '본래의 자아'를 짓누르려 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왜 이 목소리에 져야 해?‘
그 깨달음이 있은 후부터, 나의 상황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출근길, 버스 기사 아저씨의 퉁명스러운 사투리가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내가 익숙해져야할 투박한 리듬처럼 느껴졌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엑셀과 공문서 쓰는 일과 씨름해야 하는 교직원 업무도 달리 보였다.
“역시 나는 사막에 내놔도
낙타와 친구먹을 사람이구만.”
결혼을 매개로 낯선 진주에 오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아이까지 품고 있다니. 게다가 불교와 이슬람교를 넘어 이제는 천주교까지 섭렵하고 있다니! 내 결혼 초반 인생이 참 다이나믹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상황들은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나쁜 에고의 속삭임을 살살 달래주고 나니, 그 모든 낯설음이 나를 덮치는 '충격'이 아니라 내가 헤쳐 나가야 할 '모험'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를 믿고 왔든지 간에, 낯선 공간에 정착한다는 건 결국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끊임없이 재발견해내는 과정이다. 이 낯선 도시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잠재 능력과 기술을 꺼내야 한다. 그리고 낯선 파도를 맞이할 때마다 어떻게 마음을 단단하게 동여매야 하는지를 익히는 치열한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창한 결과가 없어도 좋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없어도 괜찮다. 내 앞에 놓인 이 새로운 퍼즐은 결국 나만이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가볍게 버스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물론, 버스 번호는 두 눈 크게 뜨고 잘 확인하고 타길 바란다. 멍 때리고 탔다간 파이팅 넘치는 기사님께 혼쭐이 날 수도 있으니까!)
낯선 땅을 나의 영토로 만드는 건 거창한 비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적응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나의 작은 기도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 낯선 땅조차 결국 '나의 영토'로 만들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지역과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그곳이 어디든,
나를 믿고 깃발을 꽂는 나의 당당한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