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출퇴근하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승무원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웬만한 외국어와 몸짓으로 소통의 달인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어떤 낯선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도 "아, 저 나라는 저렇지"라며 쿨하게 넘길 수 있는 포용력도 가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내 집 거실에서 마주한 ‘경상도 남자’라는 거대한 문화 장벽 앞에서는 내 모든 소통 능력이 무용지물이 됐다.
분명 같은 한국어인데, 남편의 말은 내 귀에 들어와 자꾸만 오역됐다. "어." "좋네." "알아서 해라." 어떤 의견을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이 세 가지의 무한 반복이었다. 화가 난 건지, 무심한 건지, 아니면 정말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투박한 말투를 들을 때면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차라리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대화했다면 ‘언어가 다르니까’ 하고 포기라도 했을 텐데. 같은 모국어를 쓰면서도 대화가 안 통할 때의 막막함은 외국 생활에서 겪은 그 어떤 고립감보다 컸다.
'차라리 외국인이랑 결혼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울컥한 마음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요즘 세상은 그걸 ‘츤데레’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해주기도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차가운 벽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남편의 직업은 변호사다. 밖에서는 의뢰인의 억울한 사정을 온종일 경청하고, 법정에서는 날카로운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게 그의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가장 과묵한 사람으로 변신했다. 밖에서 평생 쓸 말을 다 쓰고 온 사람처럼 그의 입과 귀는 굳게 닫혔다.
"네, 아니요, 몰라, 궁금하면 네이버 찾아봐."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제발 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대답하라고 다그쳤을까. 말을 하기 싫으면 수신호라도 보내라고 호소해 봐도, 그는 그저 소파와 물아일체가 될 뿐이었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ㄴ(니은)' 자와 똑같았다. 그래, 남편은 태생부터 그냥 거기 앉아 있을 운명이었나 보다.
그렇다고 갑자기 의뢰인에게 전화라도 오게 되면? 세상 고민 다 들어줄 것처럼 친절하게 사건을 설명하고 농담으로 의뢰인의 불안한 마음까지 진정시켜 주는 사람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황당했다. 밖에서는 비싼 수임료를 받으며 남의 고민을 척척 해결해 주는 사람이, 정작 아내와의 일상적인 대화에는 ‘무소음 모드’라니.
"내가 선임비용이라도 입금해야 말 좀 해줄 거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에 섞여 있던 건 깊은 서운함이었다. 나는 집에서도 ‘의뢰인’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 내 마음이 어땠는지 나누고 싶었을 뿐이니까. 밖에서 에너지를 탈탈 털리고 온 남자와, 온종일 그의 대화를 기다린 여자.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 거대한 문화적 격차를 메우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선임료가 아니라, 바로 ‘기다림’과 ‘침묵을 독해하는 법’라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던 시절, 내 가장 큰 고민은 아들의 ‘느린 말문’이었다. “엄마, 물.” 이 간단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무려 42개월이 걸렸다. 아이는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서 짜증을 냈고, 나는 그 이유를 모르니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혹시나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몇 개월을 고민하고 병원 예약도 했다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라는 생각에 취소도 해봤다.
하루는 너무 걱정스러운 마음에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애가 42개월인데 아직도 말이 좀 느린 것 같아.. 성격 형성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언어 치료 센터라도 가봐야 하나? 나 진짜 너무 걱정돼...”
따뜻한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이 걱정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있던 남편은 세상사 통달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난데없이 법문(法文)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경상도 말투로 1) “언어는 생각을 제한하는 도구일 뿐이다.”
“... 뭐라고?”
(경상도 말투로 2) “쟤 머릿속에 우주가 들어있어. 애들 생각은 무궁무진한데, 고작 ‘언어’라는 좁은 틀에 그 큰 생각을 구겨 넣으려니까 안 나오는 게 아닐까? 기다리라. 그 우주가 정리되면 알아서 말한다.”
언어가 생각을 제한하는 도구라니. 내 아들이 말 느린 아이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를 품고 있는 철학자란 말인가. 표현력이 곧 경쟁력이라며 아이 말이 조금만 늦어도 당장 센터로 달려가는 요즘 육아 분위기 속에서, 이토록 기막히고 태평한 해석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는 마지막 깨달음을 나에게 선사하고 쿨하게 돌아누워 하던 핸드폰 게임을 계속 진행했다.
사람들이 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절을 찾아가 불상을 마주하는지,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처음에는 남편의 그 적막한 반응이 나를 무시하는 처사인 줄로만 알았다. 내 마음속엔 수만 가지 감정이 파도치는데, 잔잔하기만 한 그를 보면 속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내 마음이 정말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역설적으로 나를 살린 건 그의 ‘미동 없는 태도’였다. 내가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댈 때 같이 날뛰는 사람이 앞에 있었다면 아마 우리 집은 진작에 난파선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수천 년을 그 자리에 머물러온 불상처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래, 내가 불상을 보러 절에 왔구나.' 생각의 프레임을 살짝 비틀자, 답답했던 침묵이 성스러운 평온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변한 적이 없었다. 단지 내가 그를 ‘번역이 필요한 외국인’에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불상’으로 다르게 정의했을 뿐이다.
혹시 내가 정해둔 ‘소통의 기준’이라는 잣대로 상대를 끊임없이 오역하며 서운함을 쌓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프레임을 살짝만 비틀어 보길 권한다. '말 없는 벽'을 '평온한 부처'로 정의하는 순간, 답답했던 거실은 비로소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결혼이라는 긴 여행에서 우리는 꼭 매 순간, 같은 언어로 완벽하게 소통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빈틈없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고유한 침묵을 존중해 주는 여백이다. 그저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마음이 도착하는 ‘타이밍’이 조금 다를 뿐. 그는 무심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가장 편안한 속도로 당신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오늘 밤, 거실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한 번만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 투박한 침묵 속에 숨겨진, 꽤 든든하고 서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