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불가사의 등재를 신청합니다: 우리의 ‘버진로드’
‘결혼’으로 여행 가려고 하는데, 가이드북 없나요?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집요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꼭 가야 할 장소와 검증된 맛집 리스트를 만들고, 반드시 사야 할 기념품도 확인한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에 따라 효율적인 동선과 최적의 교통수단도 연구한다. 낯선 곳의 생활 문화와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익히고, 짧은 현지 인사말 정도는 미리 입에 붙여둔다. 때로는 시간과 물리적 거리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할 스케줄까지 대략적으로 정리하며, 우리는 완벽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2의 인생이라는 ‘결혼’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무모해진다. 며칠짜리 해외여행보다 수천 배는 더 길고, 신비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여정을 앞두고, 왜 아무런 준비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 걸까.
나는 내가 꽤 준비된 여행자인 줄 알았다. 3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의 사용 설명서를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왔다고 자부했으니까. 그리고 내 옆에 선 이 남자 또한 나와 비슷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남녀 간에 완벽한 짝꿍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연애라는 짧은 연습 기간 동안 확인한 '이 정도의 조합'이라면 꽤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확신했다.
당신은 한국말을 쓰는 외국 사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현실의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남자는 나와 같은 한국말을 쓰지만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그 어떤 여행에서도 맛보지 못한 문화 충격에 빠졌다.
처음 한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리 집에 심각한 시차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마치 한국과 동남아 정도의 시차가 안방과 거실 사이에 흐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잠에서 깰 때까지 '예열'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데, 그는 눈을 뜨자마자—심지어 한겨울 아침 8시에—산책을 나가자고 제안하는 남자였다.
맛있는 카페에 가서는 또 어떠한가? 나는 카페 사장님의 감성이 묻어나는 인테리어와 그림들도 살피고, 테이블 위 조화가 어떻게 이렇게 생화 같을 수 있냐며 놀라워하고, 의자의 편안함과 커피의 산미, 흘러나오는 노래에 얽힌 추억을 곱씹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남편은 달랐다. 그는 커피를 시키고, 마시고, 잔이 비자마자 "다 먹었으니 나가자"며 일어나는 게 끝이었다. 가끔 기껏해야 "아, 여기 스피커 좋네." 이 정도 코멘트가 고작인 사람.
자율적인 방목형 용띠녀 vs 헌신적인 울타리형 개띠남
우리는 뿌리부터 달랐다. 나의 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있어 자율성과 책임감을 강조하셨다. 내 삶의 모든 선택지를 온전히 나에게 일임해 주신 덕분에, 나는 웬만한 난관 앞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네 인생은 네 것"이라며 놓아주신 나의 부모님. 물론 그것이 때로는 자식에 대한 무관심인가, 서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선택하고 책임지며 써 내려간 소소한 이야기들이 인생에 차곡차곡 쌓일 때, 나는 비로소 내 삶이 풍성하게 차올랐다.
반면, 내 남편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왔다. 한국전쟁의 상처 위에서 격동의 60년대를 관통해 온 시부모님들에게 자식이란 ‘당신들의 모든 것’이었다. 시부모님은 “세상 풍파는 우리가 다 막아주마, 자식들 만은 고생하지 말고 평탄한 인생을 살아라"라는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 온전히 당신들의 삶을 갈아 넣으셨다. ‘70년 살아보니 세상의 답은 정해져 있다'는 가르침, 그리고 그 헌신적인 희생에 보답하듯 남편은 성실하게 공부했고, 부모님의 바람과 본인의 능력이 더해져 번듯한 전문직을 갖게 되었다.
종교는 또 어떤가. 어디 가서 정치 얘기, 종교 얘기는 하지 말라는데 우리 집은 그야말로 경계가 없었다. 석가탄신일에는 절을 찾고, 크리스마스에는 기도를 하고, 심지어 나는 승무원으로서 나의 베이스였던 두바이에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때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외치던 아이였다. 반면 시댁은 시부모님이 성당 독서 모임에서 처음으로 만나 가정을 꾸리셨고, 그 윗대 조상님들도 천주교 신자였던 만큼 독실하고 뿌리 깊은 가톨릭 집안이었다.
덕분에 나의 결혼식은 엄숙한 '혼례 미사'로 치러지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참석한 나의 하객들은, 미사 내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뜻밖의 하체 운동을 해야만 했다. 아마 그날 내 친구들의 다리는 꽤나 뻐근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00대 불가사의 등재를 신청합니다: 우리의 ‘버진로드’
자유분방한 나와 규율이 확실한 그. 애초에 출발선부터 달랐던 두 사람이 한집에 살게 되었으니,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가치관까지 부딪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게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질서 속에서 삶을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페루에서 봤던 마추픽추, 이집트에서 봤던 피라미드보다 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것이 바로 남편과 내가 만든 '버진로드'가 아닌가 싶다. 아마 세계 100대 불가사의 리스트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불가사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시어머니는 그렇게 독실한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용띠와 개띠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최악의 상극’이라는 얘기를 들으셨나 보다. 남편에게 "용띠 여자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하지만 시어머니의 그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아도 너무 잘 닿았던 탓일까? 하필이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용띠 며느리가 제 발로 굴러들어 와 버렸다. 이건 정말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철저한 '문화 부적응자'가 되었다.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이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여행자가 될 것인지 다짐조차 하지 않은 채 덜컥 발을 들여놓은 탓이다. 서로 다른 가정환경과 성장 배경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지에서는 고작 스쳐 가는 인연들에게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매너를 지키려 애쓰면서도, 정작 평생을 함께할 ‘나의 이방인' 앞에서는 자존심 때문에 그 쉬운 말 한마디를 못 해 몇 날 며칠을 의미 없는 감정싸움으로 허비하곤 했다.
그뿐이랴. 여행 중 시간이 없어서, 경비가 모자라서, 혹은 천재지변이 생겨 목적지에 못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쿨하게 인정하면서도, 결혼이라는 여행에서는 기필코 내 마음대로 이뤄내겠다는 강력한 포부를 가지고 맞서 싸우다가 제 풀에 지치기도 했다.
가이드북은 없지만, '여행 친구'는 되어 드릴게요
아무런 가이드북 없이 시작된 이 무모한 여행. 나는 6년째 여전히 지도를 그리는 중이고, 여전히 길을 잃는 중이다. 그나마 결혼의 ㄱ은 나의 무모함이 빚어낸 가장 용감한 티켓팅이라는 것은 이제 좀 알 것 같다.
당신의 여행지는 어떠한가? 혹시 나처럼 낯선 문화와 언어 장벽 앞에서 당황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잠시 내 옆에 앉아 쉬어가도 좋다. 비록 정답이 적힌 가이드북은 줄 수 없지만, "나도 그래요"라고 말해줄 여행 친구는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