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람들은 내가 전 세계를 누비던 승무원이었음을 알면 눈을 반짝이며 묻곤 한다. 아마 모든 승무원이 가장 많이 받아보았을 질문일 것이다.
"우와, 새로운 곳에 정말 많이 가보셨겠어요! 어디가 제일 좋았나요? 어느 나라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
그럴 때마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마음속 대답을 고른다. 나의 대답은 에스쁘레~~ 쏘를 즐겨마시는 낭만적인 이탈리아도, 모든 국민들 DNA에 삼바의 열정이 느껴지는 브라질도, 땅인지 하늘인지 소금인지 모래인지 구분이 안 되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도 아니다.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신비롭고 충격적이며, 여전히 현지 적응 중인 곳. 나의 대답은 늘 '결혼'이라는 취항지다.
비행기 문이 열릴 때마다 마주했던 이방인들의 흥미로운 표정보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 때 마주하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아직도 낯설 때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던 나는, 정작 집 안에서 같은 한국어를 쓰는 동거인의 말은 번역이 필요했다. 500명의 승객을 응대하던 능숙함은 단 한 명의 가족 앞에서 처참히 무력해졌다.
결혼은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모든 것이 통하는 평화로운 합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언어도 관습도 다른 두 세계가 만나 격렬하게 부딪치는 문화 충격의 현장이자, 내 생애 가장 치열한 인류학적 탐험이었다. 그 어떤 나라보다 이질적인 문화 장벽을 넘어야 하는 고된 여정이었으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 자신의 밑바닥을 마주해야 하는 심해 여행이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아직 모든 게 미완성인 내가, 타인에게 결혼에 대한 이해와 관찰을 꺼내놓을 준비가 되었을까?" 하지만 '전쟁사'는 종전 후에 쓰는 게 아니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에서 쓸 때 가장 생생한 법이다.
결혼생활 6년 차. 누군가는 '벌써'라 하고 누군가는 '고작'이라 할 그 짧은 시간 동안, 견고했던 나의 상식은 무너지고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여행길에서 예기치 못한 나를 발견한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취항지 개척을 통해,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깊숙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는 비행 때마다 설레며 펼쳐 보았던 세계 지도가 아닌, '자음(ㄱ~ㅎ)'으로 쓰인 결혼이라는 낯선 지도를 펼치려 한다. 결의 ㄱ과 혼의 ㅎ,6년째 이 신비로운 여정에 발을 묶고 살아가는 어느 치열한 여행자의 생존 기록.
이 책은 '결혼'이라는 목적지로 향해가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불시착했거나, 혹은 그 길 위에서 길을 잃은 모든 여행자에게 보내는 나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