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초 회화 3종 세트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이 세 가지 말은 꼭 익히고 떠난다. 그 나라의 문자를 몰라도, 오직 여행지에만 관심이 있고 언어에는 무관심하더라도, 이 세 단어만큼은 꼭 배우고 간다. 아마 어느 나라든 기본 회화 3종 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낯선 도시의 여행자로 살아남기 위해선 이 세 가지 표현이 필수다.
하지만 여행자일 때는 그렇게 입에 달고 살던 그 흔한 말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이상하게 무거워진다. 남편이 하루 동안 쌓인 쓰레기를 버려줄 때, 뻔뻔한 농담으로 나의 화를 식혀줄 때, 혹은 아이가 무탈하게 하루를 보냈을 때. ‘가족이니까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내 입을 꾹 닫게 만든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게 내 가족에게는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표현에 인색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결혼 2년 차, 본격적으로 육아의 삶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아이와 하루 종일 놀고 난 집은 여기가 집인지 키즈카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질러져 있었다. 아이가 어릴수록 빨래는 빨아도 빨아도 계속 나왔다. 나중에는 이게 빨래를 내놓은 건지, 개려고 꺼낸 건지도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나와 남편의 식사까지 준비하고 나면 부엌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됐다.
하루는 짧은데 한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하루 종일 아이를 붙들고 끊임없는 집안일과 남편의 저녁 준비까지 하고 나면, 남편이 돌아올 때쯤 나는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남편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별일 없이 무사했는지가 궁금하기는커녕 1분이라도 빨리 와서 내가 숨이라도 한 번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현관문 밖에서 들리는 도어록 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그 몇 발자국 소리 앞에, 나는 이미 나갈 힘조차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잘 다녀왔어?”라는 말 한마디가 나의 무거운 발걸음만큼이나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집을 나설 때 누군가가 배웅해 주고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반겨주는 일, 그 사소한 인사가 집 안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문턱을 자주 넘지 못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가족 앞에서 이렇게 무거워질 수 있다는 걸.
결혼 6년 차, 지금은 월패드에서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면 아들과 눈을 마주친다.
“아빠 왔다!”
손질하던 채소를 잠시 내려놓고, 입고 있던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대충 닦으며 아이 손을 잡고 현관 앞으로 간다. 오늘 하루도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을 가장 크게 환영해 주기 위해서다. 별것 아닌 인사 한마디가 집 안의 공기를 바꾼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먼저 말해본다.
“잘 다녀왔어? 고생 많았어. 배고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물건을 사거나 공항을 가기 위해 만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하지만 가족은 어떠한가. 나를 위해 기꺼이 삶을 내어주는 가족에게는 그 친절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니까 당연히.
아내니까 당연히.
자식이니까 당연히.
이 ‘당연함’이 깔려 있으니 고맙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아니, 생각이 들다가도 이걸 굳이 말로 해야 하나 싶어지기도 한다. 오히려 해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며, 왜 안 해주냐고 따지게 된다.
나도 그랬다. 결혼 초반에는 살림의 순서도, 속도도 느렸다. 요리 하나를 식탁에 내놓으려면 과연 오늘 안에 이 요리가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3인 가족이 쓰는 냉장고를 한 번도 정리해 본 적이 없어서, 주방과 냉장고에는 어른 음식과 아이의 이유식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일찍 찾아온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엄마의 역할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엄마가 되면 다 하게 돼 있다”던 우리 엄마의 말대로 어쨌든 하루하루 버텨냈지만, 속수무책인 날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아빠가 처음인 남편은 왜 이런 것도 못 해줄까. 왜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할까. 왜 하나를 말하면 하나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을까. 불만이 쌓여만 갔다.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할 점을 보기는커녕, 해주지 않은 부분을 더 크게 보던 날들이 있었다.
결혼식의 화려함이 지나고 현실 앞에 서 있던 나는, 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깨달은 점은,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해 본 적이 얼마나 있었나 하는 것이었다. 받는 입장에만 익숙했던 자식의 자리에서 오래 살다가,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야 알겠다.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걸. 나의 엄마도 사실은 고된 집안일과 바깥일에 지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쉬고 싶었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의 몸이 피곤했을 텐데도 나를 위해 물 한 잔 떠다 주는 일이 얼마나 큰 수고였는지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조금 느끼고 있다. 그래서 말한다.
“아까 출근길에 쓰레기 버렸어? 고마워~”
“ 내가 좀 피곤해서 예민했는데, 그냥 넘어가 줘서 고마워.”
고마움은 대단한 행동 뒤에 오는 감정이 아니었다. 같은 공간을 함께 버텨주는 일, 오늘 하루의 끝을 식탁 앞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 그게 고마운 일이라는 걸 깨달으니 남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가 제일 가관이다.
새로운 도시의 여행자에게 ‘감사합니다’만큼이나 절실한 단어는 ‘미안합니다’이다. 스미마센, 뚜이부치, 쏘리, 페르돈…. 그 나라의 규칙을 몰라 당황스러울 때도, 그들만의 매너를 몰라 불편을 겪게 했을 때도, 그저 낯선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동선을 방해할 수밖에 없을 때도. 그때의 미안함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겸손이었다.
그런데 정작 ‘결혼’이라는 여행길에서 만난 두 ‘이방인’은 서로에게 얼마나 “미안해”라는 표현을 잘하고 있을까. 특히 우리 집에는 이상한 ‘미안합니다’ 법이 있다.
남편이 자주 쓰는 사과법은 이러하다.
“그래, 미안하다 치자.”
처음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진짜 한 대 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 같았다. 치자라니. 미안하면 그냥 미안한 거지! 소리도 쳐봤지만 그래도 '치자'란다.
그런데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건 미안해! 근데 오빠도…”
미안하다고 해놓고 바로 변명을 붙이는 기술은 나도 수준급이었다. 사과는 했지만 절대 지지는 않겠다는 나의 근본 없는 자존심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변명 대신 그냥 “미안해”라고 말해본 날이 있었다. ‘근데’도 붙이지 않고,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날은 싸움이 길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남편 역시 방어를 내려놓았다. 부부 싸움은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의 마찰일 뿐이었다. 미안해라는 그 사과의 한마디가 그 어떠한 나의 입장을 대변하는 많은 문장보다도 더 크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말하는 것보다, 내가 이만큼 해냈다고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세 마디만 잘해도 나의 결혼 여행은 꽤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이방인으로서 서로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여행자의 자세로.
어쩌면 나는 지금, 결혼 이후에야 ‘안녕’의 ㅇ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