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넷을 둔 남자와 결혼한 할머니 이야기
나의 할머니는 스물아홉, 꽃같이 예쁜 나이에 자식이 넷이나 딸린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친정엄마로부터 “너와 인연을 끊겠다”는 불호령을 들으며 택한 가시밭길. 그 길을 기어이 꽃길로 일구어 오신 지 어느덧 60년이 다 되어간다.
당연히 할머니의 결혼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결혼을 하고 보니, 할아버지에게 남아 있던 건 낡은 트럭 한 대와 거의 다 자란 네 아이뿐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중 가장 막내아들이었고, 우리 아빠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 ‘엄마’라는 존재가 새로 생긴 것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청혼을 할 무렵, 할머니는 시장에서 꽤나 유명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전국을 누비며 장사를 했던 할머니. 긴 머리를 허리까지 단정히 땋고 하얀 바지를 즐겨 입던 젊은 시절의 흑백사진 속 할머니는, 컬러 사진보다 더 또렷하게 빛나 보였다.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을 그렇게 함께 버텨주셨다. 바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부모의 자리를 지켜주신 분.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간다고들 하는데, 내게는 그 사람이 할머니였다.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늘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셨다. 불안했던 시절에도, 괜히 세상이 궁금해 이리저리 헤매던 시간에도 할머니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고 사랑한다고 항상 말씀해 주셨다.
나의 아버지 역시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 결핍은 조용히 우리 집 안을 맴돌았고, 나는 늘 기댈 곳을 찾는 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를 붙들어 준 사람이 할머니였다.
그 긴 세월 동안 할머니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도 겪었고, 결국 할아버지도 떠나보냈다. 할머니의 결혼 생활이 마냥 꽃길이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 시간을 후회처럼 말하지 않는다.
예전에 할머니와 목욕탕에 갔다가 오는 길에 분식집에 들른 적이 있다.
결혼할 나이가 다가오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조심스레 물으셨다.
“결혼 생각은 없냐?”
나는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할머니, 결혼은 어떤 사람이랑 해야 돼?”
할머니는 김밥을 다 씹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살아보니 부부 인연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 그냥 살아가다 보면 만나는 거더라.”
그때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할머니의 인생을 함께하며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누구를 만나느냐보다, 그 사람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였는지 모른다.
한 번은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자 핸드폰을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한테 나의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을 말해봐야 내 가정에 침 뱉는 격이고 내가 선택한 결혼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명. 할머니만큼은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았다. 결혼이 이렇게 힘든거였냐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 살았지 할머니는 나한테 왜 자꾸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며 가르쳤냐고. 그러면서 할머니는 자식이 넷까지 딸린 할아버지를 만나서 어떻게 그 기나긴 세월을 버텼냐며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어?”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너의 할아버지를 존경했어….”
초등학생 때 위인전이나 독후감에나 적어 넣던 ‘존경’이라는 단어가 할머니의 입에서 나왔다. 어떤 점이 그렇게 존경스러웠냐고 묻자, 할머니는 어느새 처음 할아버지를 만났던 소녀처럼 웃으며 말했다. 어린 나이에 한글을 겨우 깨쳤던 할머니의 눈에, 붓을 들어 정갈하게 써 내려가던 할아버지의 필체는 그 무엇보다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글씨를 참 반듯하게 썼지. 필체가 어찌나 멋스럽던지 내가 그거에 반했잖아.”
할아버지 얘기를 할 때면 할머니는 항상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시는 버릇이 있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지금도 할머니가 손을 포개고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미 25년 전 돌아가신 남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할머니는 마치 스물아홉의 여자로 돌아간 듯 보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존경은 설렘보다 오래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할머니가 말한 ‘존경’은 내게 감정보다 태도에 가까운 단어가 되었다. ‘순간’이 사랑에 빠지게 한다면 한다면, ‘존경’은 기꺼이 너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보겠다는 태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밥 먹는 모습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꼴 보기 싫은 것이 아홉 가지가 넘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단 하나, 내가 갖지 못한 빛나는 한 조각을 남편의 모습에서 발견한다면. 그 한 가지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할지도 모른다.
존경은 완벽함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방향을 믿고 함께 걸어보겠다는 선택이다.
아홉 가지의 미움 속에서도 빛나는 단 하나의 ‘존경’. 그것이 할머니로부터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 긴 항해를 계속하게 하는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