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 충격의 ㅊ,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 나와 같은 편이 되다

by 영선코

결혼이라는 문 앞,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


결혼을 준비할 때 우리는 보통 어디를 가장 먼저 찾을까?

예쁜 드레스를 고르기 위한 스튜디오일 수도 있고,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웨딩홀일 수도 있다. 어쩌면 너와 나의 미래가 궁금해 점집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조금 달랐다.


바로 심리치료센터였다.


아마도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존재의 어딘가가 흔들릴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가정 안에서 완전한 편안함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기억이 내 안에 어떤 불안을 남겨 두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반복이 싫어서 아주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나는 비혼주의자야.”


그렇게 도망치듯 살아오던 내가 막상 결혼이라는 문 앞에 서게 되자, 그동안 미뤄 두었던 질문들이 한꺼번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바라는 배우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결혼을 결정하고 나자 설렘보다 먼저 어떤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막연한 불안이었다. 눈에 보이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불안의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완벽함'이라는 허상과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상담사가 건넨 문장 완성 검사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 ______ )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적었다.


“완벽한.”


그때는 몰랐다. 내가 정말 완벽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 욕망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말이다. 나는 완벽한 아내가 되고 싶었고, 완벽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고,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부터 그 생각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결혼식 준비도 이런데, 결혼 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결혼 전에는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혼자 멀리 떠날 수도 있었고, 보기 싫은 사람과는 거리를 둘 수도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어떻게 요리해 먹든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늘 변수투성이었다.

남편은 내가 생각해 놓은 각본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나는 불편한데 오히려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남편의 말이 변명처럼 들렸다. 호의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상대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 같았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

때가 되면 울면서 젖을 찾는 아들,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시는 시댁,

모든 것이 서툰 집안 살림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의 고립감.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결혼이라는 세계였다.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에서 맴돌던 시간


결혼 초반, 남편과 나는 서로 날 선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여러 번 마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툭 던진 말이 있었다.


“너는 자존심은 강한데 자존감은 낮아.”


그의 말이 홧김이었는지, 진심 어린 충고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을 붙잡고 꽤 오래 떠돌았다. 결혼 6년 차인 현재까지도 나는 이 충고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 자신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되돌아보는 중이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내가 지키려 했던 자존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문득 결혼 전에 했던 심리검사가 떠올랐다.

‘완벽한 사람.’

내가 나에게 준 답이었다.


완벽해지고 싶었던 나는, 사실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정작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완벽하고 싶다는 나는 사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싫은 소리는 듣기 싫어하는 나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다 뜻밖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아이를 통해 마주한 나의 결핍, 그리고 존재의 고유함


고통과 행복은 늘 손을 잡고 다니는 연인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출산과 양육은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가장 깊은 고통이었다. 비행기에서 생수 8개 들어간 무거운 컨테이너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던 나인데, 4kg짜리 남자아이 들어 올리느라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아파왔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하는 엄마가 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 앞에 유모차를 나무 뒤에 숨겨놓고 도망을 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있었다.


두 돌이 될 무렵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고 학부모 행사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 만 0세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비슷하게 생긴 작은 존재들이지만, 이미 제각각 다른 행동과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조용했고, 어떤 아이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고, 어떤 아이는 낯을 가렸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 다르구나.


그 다름은 잘못도 아니고 우열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존재일 뿐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떠올랐다. 나는 평생 아버지의 불안과 결핍이 나에게 대물림된 것만 같아 원망하며 자랐다. 부모님을 탓했고, 나를 탓했다.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한지.

왜 이렇게 예민한지.

왜 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지.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야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그 불안도, 예민함도, 깊게 생각하는 성향도 모두 내 존재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고, 글을 읽고 쓰며 이해했고, 넓은 세상을 둘러보며 그 속에서 다른 존재들을 궁금해하고 다가가는 용기를 가지게 됐다. 내가 상처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나를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게 했다.


비로소 나와 같은 편이 되다


존재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지, 존재 자체에 의미를 덧씌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이를 통해 배웠다.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부족한 내 모습도, 감정 조절이 안 돼서 화를 낼 때에도, 자존심만 앞섰던 태도도 모두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존재일지 모른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였다. 지난 6년의 결혼 생활은 내게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고유함을 가르쳐 주었다. 자존감은 완벽해지는 힘이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태도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완벽이라는 상대와 싸우지 않기로 했다.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 KO 당하듯 무너지는 대신 그 자리에서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배워가는 사람, 부족해도 괜찮은 사람.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냥 존재로서 이미 충분한 사람.


나는 이제야 나와 같은 편이 되었다.

내가 나의 편이 되고 나니 남편도, 아이도, 나의 과거도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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