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 화장실에는 냄새가 난다.
기대를 태우고 날던 시절
나의 마지막 사회적 명함은 승무원이었다. 나는 그 직업을 정말 사랑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주저 없이 또 선택하고 싶을 만큼.
비행기라는 공간은 늘 묘한 설렘으로 둥둥 떠 있다. 엔진이 연료를 태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탄 사람들의 기대와 부푼 마음이 동력이 되어 뜨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음료 서비스나 식사 카트를 밀며 만나는 승객들의 사연이 늘 궁금했다.
“오늘 여행 가세요? 가족 만나러 가시나 봐요? 오늘 향수가 참 좋아요. 어느 브랜드예요?”
나의 작은 관심에 그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화답했다. 슬픈 사연을 안고 타는 이도 분명히 있다. 비행기 타기 전에 어떤 언짢은 일이 있었는지 타자마자 의자 쿠션이 불편하다고 컴플레인으로 시작하는 손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손님들의 표정에는 ‘기대’가 서려 있었다. 목적지에 닿으면 어떤 기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 비행기 문이 열리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설렘. 나는 그 반짝이는 시선들을 마주하는 게 참 좋았다.
절망을 받아내는 사람
내 남편의 직업은 변호사다. 단언컨대, 좋은 일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건 단순히 법률 지식으로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위기와 갈등, 깊은 고민과 때로는 처절한 눈물까지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일이다.
주말이든 휴가든 남편의 휴대폰은 자주 울린다. 인생이 걸린 문제를 맡긴 사람들이니 밤낮없이 불안하고 궁금할 것이다. 그 간절함을 알기에 주말에도, 밤낮으로 전화하는 의뢰인의 마음도, 그 전화를 받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럽다. 솔직히 내 배 아파 낳은 아들이 “엄마, 물 좀 줘”라고 해도 내가 지쳐 있을 땐 몸을 일으키기 힘들다. 하물며 타인의 인생이 걸린 하소연을 쉼 없이 들어줘야 하는 마음의 피로도는 오죽할까 싶다.
대체 불가능한 고독
변호사의 일은 끝이 없다. 공장처럼 기계를 돌려 물건을 찍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전문 지식과 시간, 감정을 갈아 넣어야 일이 굴러간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의뢰인의 사건은 처리되지 않는다. 나를 대신해 줄 사람도 없다. 그 지독한 ‘대체 불가능성’이 그를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나는 다 알 수 없다.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직업이 어쨌든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도 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승무원과 변호사도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의 일종이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과, 그가 매일 마주하는 표정은 너무 다르다. 나는 기대에 찬 승객들에게 편안한 여행을 건넸지만, 그는 절망 속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 올려야 한다. 웃으며 비행기에 오르는 승객이 거의 없는 비행기. 매일이 난기류인 공간. 그게 그의 사무실이다.
퇴근을 한 남편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하아…” 하고 길게 내쉬는 한숨 속에, 그가 삼킨 하루가 담겨 있다. 꽉 조인 셔츠만큼이나 단단했던 긴장이 그 소리와 함께 풀려 나온다. “머리가 아프다…” 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안아주고 오늘은 별일 없었냐며 물어보는 그 한마디가 전부라서 못내 아쉽다.
모든 집 화장실에서는 냄새가 난다
그럴 때면 친정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모든 집 화장실에는 냄새가 난다. 남들이 볼 땐 다 완벽해 보여도, 문 열고 들어가 보면 다 사연이 있는 거라.”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알겠다. 사람 사는 집에 완벽한 성적표는 없다. 누구나 한두 과목쯤은 낙제점을 안고 산다. 겉으로는 번듯해 보여도, 각자의 화장실에는 남모를 냄새가 있다.
사람들은 내 남편이 변호사라고 하면 부러움 섞인 말을 건넨다.
“좋겠다, 밥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그 ‘전문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은,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절망을 ‘전문적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아내의 삶이란, 때때로 내 몫의 기쁨과 슬픔을 의뢰인의 삶의 뒤로 잠시 미뤄두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밖에서 타인의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돌아와 침대에 지친 눈을 감는 남편을 볼 때면, 오늘 하루 내가 겪은 속상한 일이나 아이의 사소한 재롱을 신나게 나누려던 입을 조용히 닫게 되는 날이 있었다. 의뢰인의 다급한 전화 한 통에 밀려 정작 나의 다급한 감정들을 목구멍으로 삼켜야 했던 나의 일상들도 있었다. 남편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나의 힘듦이나 외로움쯤은 잠시 혼자 감내해야 했던 적막한 시간들이 있었다. 들여다보면 그것이 바로 화려한 명함 뒤에 가려진 우리 집 화장실의 고충이자, 남모를 냄새일 것이다.
결혼이 가르쳐준 인간의 의리
처음에는 그 냄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혼 이후 연고를 옮겨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려고 직업을 얻었지만, 임신과 출산이 빠르게 찾아오는 바람에 나의 사회적 명함은 단절되었다. 스무 살 때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시작했던 나에게,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더 이상 급여가 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사회적으로 깊이 고립시켰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서툰 그의 모습에 "왜 이것밖에 못 해주냐"며 화를 낼 때마다 "일이 바빠서 신경을 쓸 수 없다"는 대답을 내뱉는 남편을 죽도록 원망해 본 적도 있다. 의뢰인의 갈등과 고통에는 기꺼이 뛰어들면서 정작 아내의 갈등과 외로움에는 무관심한 것 같은 그에게 끝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매일 아침 무거운 어깨를 이끌고 기꺼이 타인의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힘들고 피곤하다며 내색하기는커녕, 깊은 한숨으로 묵묵히 하루를 마무리할 뿐이었다. 그 곁을 지키며 나의 서운함은 서서히 연민과 이해로 바뀌어갔다. 그가 지친 얼굴로 내쉬는 한숨이 나를 향한 짜증이나 무심함이 아니라, 하루치 갈등을 무사히 버텨냈다는 안도감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꽤나 오랜,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냄새를 탓하지도 않으려 한다. 다만, 겸손해지려고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각자의 집에도, 각자의 화장실에도, 설명되지 않은 사정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 부부마저 서로에게 다 터놓을 수 없는 각자만의 고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냄새를 지적하기보다, 그 문을 열고 나온 서로의 등을 한 번 더 쓸어내려 줄 수 있다면 그게 결혼이 내게 가르쳐준 인간의 의리이다.
오늘도 묵직하게 출근하는 그의 등을 보며, 나는 조용히 존경과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