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이유 = 싸움의 이유
중동항공사를 이용하는 손님들의 프로파일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한국 손님으로는 60대 이상의 패키지 관광객들이 유독 눈에 띈다. 자녀를 다 키우고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된 분들이다. 가끔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우신 분들은 비행기 안에서 한국인 승무원인 나를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요청을 하시곤 했다.
특히나 이런 연령대의 패키지여행 손님들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 편은 꽤 피곤한 일정이다. 새벽 비행에 시차까지 겹쳐 잠을 설치시는 분들을 볼 때면, 나는 화장실 앞이나 비행기 문간에서 가볍게 말을 건넸다. 나의 질문 하나면 좁은 복도에서도 금세 이야기꽃이 핀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는 손님들에게서는 늘 비슷한 피드백이 나왔다.
"이탈리아 너무 좋으셨죠? 건물도 멋지고 날씨도 좋잖아요."
"맞아, 경치는 참 좋은데 말이야. 근데 그놈의 파스타가 생각보다 짜고 느끼해서 나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 김치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
나는 그 푸념을 들으며 속으로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도 했다. 본토에 가서 진짜 파스타를 드셔 놓고 김치를 찾던 내 모습도 떠올려 보면서.
그런데 승무원 시절 만났던 그 손님의 모습이, 훗날 내 결혼 생활에서 고스란히 재현될 줄은 몰랐다.
나의 아버지는 감정 기복이 심하신 편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그런 날이 아닐 때에는 술을 드시고 주정을 하셨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시작되는 밤이면 동생과 나는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런 감정 기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배우자의 우선순위는 딱 하나였다.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
‘화가 나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스스로 진정시킬 줄 아는 사람.’
지금의 남편과 처음 소개팅을 하던 날, 우리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보는 순간 신내림을 받은 듯 나는 직감했다.
'이 사람이라면 불안이 반복되지 않겠구나. 적어도, 내가 겪었던 불안이 내 아이에게만큼은 반복되지 않겠구나.‘
잔잔한 호수 같은 그 사람 곁이라면 내 인생도 고요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그 '고요함'이 가장 큰 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살다 보면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때로는 분명히 화나는 일도 있을 텐데, 이 남자는 도무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언제나 "음... 그래, 뭐 그렇지 뭐." 하는 것이 모든 상황에 대한 만능 대답이었다. 요즈음은 AI한테도 "오늘 하루 어때?"라고 물어보면 구구절절 자신의 얘기를 시작하는 시대인데, 내가 AI보다 못한 남자를 고른 것일까.
결혼이라는 낯선 과정 속에서 내 안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오갔다. 그런데 나에 비해 너무 담담한 남편의 태도는 오히려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나한테 관심이 없나?’
‘아내의 상황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인가?’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가?’
무덤덤하고 편안해서 결혼을 선택해 놓고, 이제는 그 무덤덤함을 빌미로 싸움을 걸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나의 모습은 마치 제대로 된 파스타를 먹겠다며 이탈리아 식당까지 찾아가 놓고는, "왜 이렇게 느끼해? 내가 먹던 맛이 아니잖아! 여기 김치 없어요?!" 하며 불평하는 손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편의 감정 깊이가 나와 다르다고, 표현 방식이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누구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구는 노래를 잘하듯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각자 다루는 능력이 다를 뿐이다. 나는 희로애락의 깊고 높은 파도를 타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남편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한 파도를 유지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나의 감정 기복이 틀린 것이 아니듯, 남편의 무덤덤함 역시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다른 기준치라는 걸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래, 이탈리아 식당에서 음식이 느끼하다고 떼를 써봐야 김치가 나올 리 없다.
늘 한결같이 요동치지 않는 이 남자 앞에서 내가 왜 처음 파스타를 먹겠다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 그게 내가 이 결혼에서 잊지 말아야 할 ‘파스타 먹는 법’인 것 같다.
물론 파스타 집에서 김치를 찾을 수는 없어도, 식당 측에 맛에 대한 '피드백' 정도는 정중하게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는 남편에게 내 감정을 알아달라며 화도 내보고 애원도 해보았다. 하지만 내 남편의 생각 회로에는 그런 감정적 호소가 잘 입력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감정이 올라오고 화가 나도, 일단 숨을 고른다. 그리고 남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감정은 조금 덜어내고, 지금 내 상황과 기분이 어떤지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입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내가 먼저 당신을 공감한다고 표현하는 방식까지 말이다.
그러자 남편도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무덤덤한 얼굴로 이런 말을 건네왔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고맙다."
"아까 그 부분은 내가 미안해. 사실은 나도 그런 부분이 서운했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입에서 나온 묵직하고 진심 어린 소통이었다.
결혼 6년 차, 내가 선택한 요리 앞에서 다른 반찬을 찾기보다 메인 요리를 충분히 즐기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