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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u Dec 09. 2020

#68. "잘 싸우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어요"

삶의 철학이 녹아든 문장 하나가 삶의 진지한 자세를 만들어준다.


세계일주를 해본 몇 안되는 지인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몇 년 전에 결혼을 한다며 소식을 전해왔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를 위해 축하자리가 마련됐다. 머쓱한 모습으로 청첩장을 내밀며 오고가는 축하 인사 속에서 머리를 '탁' 하고 맞은듯 멍해진 순간이 있었다. 


"신혼여행은 3개월 후, 퇴사하고 떠나려고 해요. 세계일주로"

"어? 진짜???"


10명 중 9명 이상은 이런 반응들이라며 나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그 친구는 온화하게 대처했다.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불리는 친구이기도 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이는 친구였기에 처음의 당혹스러움과는 달리 금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도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임을 알기에 갖가지 질문들이 뒤죽박죽 순서없이 머리속에 끼어들었다. '어디부터 갈껀데?', '예산은 얼마나 잡고?', '괜찮겠어?', '회사는 왜?'... 그런 모습을 눈치챘는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신혼여행을 세계일주로 잡고 1년을 계획한다고 했다. 호기로운 그 친구의 모습에 감탄과 함께 어쩌면 존경심까지 생겼던 순간이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한번씩은 품어봤던, 대부분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는 꼭 들어가있는 '세계일주'. 불안정한 이 시대에, 아직 확실하지 않는 미래에 전전긍긍하기보단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기준하여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긴 모습은 나보다 어리다고해도 단전부터 끓어오르는 그에 대한 존경심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SNS를 통해 틈틈이 그들의 행보를 기록해놓았다. 비록 그 여행에 함께 동참할 순 없었지만 그들의 사진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해보지못했던 미지의 영역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는게 바빠서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그런건지 1년이란 세월이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다. 


그를 포함한 크루가 다시 뭉쳤다. 잘 갔다왔냐는 안부와 함께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이 대화의 주 내용이 되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어디어디 갔다온거야?', '싸우진 않았어?' 

여행을 갔다온 그에겐 이골이 날 질문들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다들 궁금한건 똑같은가보다. 1년 동안의 경험을 어찌 몇 마디 말로 풀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에 머물러있던 사람들로썬 그 동안의 그의 행보가 궁금했고 부러웠고 스토리라도 들으며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와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와이프랑 많이 싸우지 않았어?"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잘 싸우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어요"


잘 싸우기 위해서라니. 일반적으로는 와이프와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여행하는 거 아닌가. 뭔가 차원이 다른 우문현답의 순간이었다. 사실 전혀 다른 성장환경에서 자라온 소위 '성인' 남여가 만나 하나의 문화를 이루는 것인데 그게 어찌 순탄하겠는가. 하나의 문화를 바꾸는 데에도 수백년이 걸리는데 두 개의 문화가 하나의 문화로 융합되기엔 당연히 소음과 잡음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베이스가 대화이고 그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하는지는 입장을 잘 정리해아한다. 그가 말하는 '잘 싸우기 위해'는 정말 건강한 싸움인 것이다. 서로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날카로운 말들만 뱉어내며 마음에도 없는 상처주기식 대화가 아닌 것. 


책을 덮어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곱씹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는데 이 문장 하나가 나에겐 그랬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흘러도 그 문장은 계속 나에게 대입되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고 삶에 대해 진지한 삶의 자세를 취하게 만들어주고있다. 어쩌면 그의 1년간의 여행 스토리보다 그의 철학이 나를 더 넓은 양질의 세계로 데려다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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